가루지기 <393> 계집의 눈빛에서 딴 속셈이...
가루지기 <393> 계집의 눈빛에서 딴 속셈이...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20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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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43>

아무래도 정사령놈한테 원한이 많은듯한 주모가 입술을 깨물었다.

"국밥이나 한 그럭 말아주씨요. 탁배기도 한 병 주시고라우."

"그러씨요. 국밥 끓일동안 방으로 들어가 몸 좀 눕히씨요."

주모가 강쇠 놈의 등짝을 밀어 방으로 몰아 넣었다. 계집의 눈빛에서 딴 속셈이 있는 것을 뻔히 눈치챘으면서도 강쇠 놈이 못 이긴듯이 뒷방으로 들어갔다. 주막의 골방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방 안은 컴컴했다.

주모의 말이 아니드래도 벽에 기대어 앉아있을 기운도 없는 강쇠 놈이 방바닥에 큰대자로 몸을 눕혔다. 이내 눈이 감기고 잠이 쏟아졌다. 강쇠 놈이 코까지 드렁드렁 골며 한 숨 맛있게 자고 있을 때였다.

아랫녁에서 이상한 느낌이 왔다. 열 서너살 때던가? 어쩌다 담너머로 본 양반집 새아씨를 뒷산 잔솔밭에서 품고 몸부림을 치다가 허망한 꼴을 볼때같은 위기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자칫 조금 더 버티다가는 거시기 놈이 저 혼자 토해놓은 게거품으로 바지를 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럴 때는 눈을 떠서 꿈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강쇠 놈이 눈을 슬며시 떴다.

주모가 사내의 바지를 절반 쯤 내려놓은 채 대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물기를 담아 번들거리는 눈으로 침까지 꼴깍꼴깍 삼키며 정신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강쇠 놈이 주모의 동태를 살피느라 숨을 죽였다.

'크네, 크네해도 이리 큰 놈은 또 첨이네. 이런 살몽둥이로 맞고 사는 계집은 얼매나 조으까이.'

주모의 눈길을 탄 거시기 놈이 먼저 알아보고 고개짓을 했다. 주모가 한숨을 푹 내쉬며 바지춤을 올렸다. 강쇠 놈이 그제야 잠이 깨어나는 체 눈을 번쩍 떴다.

"아이고, 맛 있게 한숨 잤다."

강쇠 놈이 아으윽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앉는데, 주모가 말했다.

"많이 노곤했던 갑소이. 방에 들자마자 잠이 든 것을 본깨."

"말도 마씨요. 사흘 동안 제대로 눈 한번 못 붙이고 살았소."

"그래서 어쩐다요? 머니머니해도 사람헌테는 잠이 보약인디. 허면 국밥부터 잡수고 한 숨 주무시씨요. 내 잠 잔 값은 안 받을 것인깨."

주모가 국밥과 탁배기가 올려진 개다리 소반을 강쇠 놈의 턱 밑에 밀어놓으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눈밑이 거무튀튀하고 눈동자에 물기가 맺혀 번들거리는 것이 사내깨나 밝힐 얼굴이었다.

"왜요? 내 얼굴에 멋이 묻었소?"

강쇠 놈의 눈빛에 주모가 진저리까지 치며 물었다.

"멋이 묻기는요. 오널본깨 아짐씨의 얼굴이 참 곱소. 한참때는 사내께나 울렸겄소."

"곱기넌. 내 나이 낼모레면 쉰이 다되가요. 주꾸렁할망구가 다 되었제요. 시장헌디 어서 잡수씨요."

주모가 탁배기부터 한 잔 사발에 따라 주었다. 그것부터 한 잔 마시고 강쇠 놈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국밥 한 그릇을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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