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91> 징헌 놈, 천하에 징헌 놈
가루지기 <391> 징헌 놈, 천하에 징헌 놈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19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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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41>

강쇠 놈이 넉살을 떨며 방아고를 깝죽거렸다.

"아, 그만 허라지 않소. 참말로 초상 치룰 일 있소?"

주모가 고함을 버럭 지르며 강쇠 놈의 목울대를 잡고 힘을 다해 밀어냈다. 계집의 손아귀에 목울대를 눌린 강쇠 놈이 숨이 컥 막혀 캑캑거리며 몸뚱이를 내려놓았다.

"징헌 놈, 천하에 징헌 놈."

주모가 중얼거리며 저고리를 걸치고 치마끈을 매더니 북북 기어서 방을 나갔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나 죽겄네, 신음을 내뱉으며 엉금엉금 기어 방을 나갔다.

"어디를 가시오? 나넌 안직도 멀었는디요."

강쇠 놈이 주모의 등을 향해 이죽거리다가 씩 웃었다. 밤내내 헛품만 실컷 판 거시기 놈이 주인님 너무허시요,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눔아, 참아. 일진이 사나운 날은 그런 일도 있는 것이여. 너 즐겁게 허자고 내가 죽을 수는 없는겨."

손가락으로 놈을 두어 번 퉁겨주고 강쇠 놈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그때였다. 주모가 다시 엉금엉금 기어오더니 방문턱에 걸터 앉은 채 작은 보따리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가씨요. 꼴도 뵈기 싫은깨 어서 가씨요."

"가다니요? 어디로 가라는 말씸이요? 아짐씨허고 나허고는 함께 살기로 했잖소? 검은 머리 파뿌렁구 될때꺼정 살자고 합환주도 마시고 안 그랬소."

"내가 사람얼 잘못 봤소. 이녁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요, 짐승. 이것 서른냥인깨 가지고 가씨요."

"서른냥이요? 먼 서른냥을 나헌테 준다요? 나 돈 필요없소. 아짐씨허고 천년만년 살라요."

강쇠 놈이 금방이라도 돈보따리로 가려는 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으며 고개까지 내저었다.

"아니요. 가씨요. 이녁허고 살면 내가 이레도 못 전디겄소. 내 명대로 못 살겄소. 긍개, 가시씨요. 정 안 가면 내가 정사령을 부르던지, 이사령을 부르던지, 운봉 사령들을 불러 끌어낼 것이요."

주모가 단단히 각오한 것이 분명했다. 눈에 서슬까지 매달고 노려보았다. 강쇠 놈이 버티면은 정말 운봉 사령놈들을 불러올 기세였다. 그러나 예, 그럽시다, 하고 쉽게 물러날 일은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자칫 영악한 주모한테 이 쪽의 속내를 들킬지도 몰랐다.

"아무리 계집년들의 주둥팽이가 소캐보다 가볍다고 해도 주모아짐씨꺼정 그럴 줄은 몰랐소. 모처럼만에 궁합이 맞는 아짐씨를 만냈는가 했는디, 이리 쬐껴나다니 허퉁시럽소. 나 안가면 안 되겄소?"

"안 되겄소. 내가 살고 봐야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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