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89>또 허요? 또?
가루지기 <389>또 허요? 또?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1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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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39>

비록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거시기 놈이 거품을 물지도 않았지만, 심신이 물먹은 솜처럼 피곤했다.

'흐따, 우 알로 따땃해서 좋구만이. 이대로 잠이나 한숨 자야겄구만이.'

그런 생각을 하자 저도 모르게 두 눈이 살풋 감겼다.

따뜻하고 달콤한 잠이 심신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길고 긴 잠이 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그 따뜻한 기운으로 푹 잠이 들 것 같던 거시기 놈이 먼저 기척을 냈다. 아니, 강아지의 부드러운 혀가 거시기 놈을 살살 핥는 것 같은 감촉이 편안한 잠 속을 흘러가는가 싶더니, 거시기 놈이 주인의 잠을 깨웠다. 죽을 고생만했을 뿐, 한번도 거품을 물지 않은 거시기 놈이 고개를 발딱 치켜 들고 죽고 싶소, 나도 죽고 싶소, 하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흐긴, 죽쒀서 개주는 것도 아니고, 주인 잘못 만난 죄백이 없는 놈인디, 헛품만 팔아서는 안 되제이.'

거시기 놈이 불쌍한 강쇠 놈이 엉덩이를 깝죽거렸다.

"또 허요? 또?"

주모가 울음 절반의 목소리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깼소?"

"징허요. 그만 좀 허씨요."

"그만헐 때 그만허드래도 이놈이나 죽이고 그만해야겄소. 아짐씨만 극락에 댕겨와서야 쓰겄소? 이놈도 극락 문전이라도 귀경얼 시켜야제라우."

"참말로 내가 죽겄어서 그요. 저녁내 무거운 등짐을 지고 밤길을 헤맨 것 맨키로 허리가 뻑적지근허요. 인월 삼거리 주막계집들이 왜 하루 밤만에 두 년이나 뻗어뿌렀는가 인자 알겄소. 징허요."

주모가 그러거나 말거나 강쇠 놈이 거시기 놈을 위해 부지런히 엉덩이를 놀렸다. 그러다가 거시기 놈을 시켜 확 속을 이곳저곳 들쑤셔댔다. 그런 어느 순간이었다. 강쇠 놈은 방아확이 움찔움찔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입으로야 싫네싫네하면서도 주모도 어느 사이에 살문이 열린 것이었다.

그러자 거시기 놈이 더욱 의기양양해 졌다.

'하이고, 나 죽네. 하이고, 엄니, 나 죽네."

주모가 끙끙 앓았다. 암내 난 고양이가 목을 끌이듯이 끙끙 앓아댔다. 이래도, 이래도 니 년이 나럴 붙잡을레?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스무남은 번이나 방아를 찧었을까? 주모가 꺅 비명을 남기고 온 몸이 풀썩 갈아 앉았다. 막상 계집이 몸을 풀어버리자 강쇠 놈은 신명이 나지 않았다.

죽은 듯이 누어있는 계집을 상대로 살방아를 찧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잡놈 체면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다.

'이눔아, 저녁에는 참자이. 오널만 날언 아닌깨, 참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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