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승리
역사의 승리
  • 진동규
  • 승인 2012.11.15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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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내린 비가 시가지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거리거리 색다른 풍경들을 연출해 놓았다. ‘강남 스타일’의 싸이에게 붓을 쥐어 주면 이런 붓질이 나올 터이다. 어떤 나무는 검은 가지만 남긴 채 다 털려버렸고 빗물에 헹군 노란색이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다. 거리가 온통 물감통을 엎질러 놓은 듯 질펀하다.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를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들이 어젯밤 빗속을 휘젓고 다녔는가 보다.

골목 어귀에서 발을 멈추어 섰다. 빠른 속도로 인도 위의 잎사귀들을 둥글게 둥글게 휘감으며 오더니 골목 어귀에서 기둥을 세우려다 말고 스러져 버렸다. 작업의 순간이었다. 작업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골목길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르포 기자처럼 풀어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바람에 물어 온 외신들을 풀어 보인 것이었을까? 참으로 멋진 싸이다운 붓놀림이 아닌가.

이 계절 챙겨야 할 것들이 어쩌면 이렇게 엊그제는 오바마가 멋진 선물을 했다. 이 지구상의 어떤 역사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언문을 쓸 수 있을까.

그는 대선 출마의 첫마디에 아버지를 내세웠다. 케냐 유학생의 아들임을 내세웠다. 케냐의 젊은 유학생이 미국에 들어온 것은 백인과의 결혼금지법이 해제된 2년 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아들이 두 살 때 이혼해 버린 사람이다. 이번의 재선은 미국에서 백인 우월주의는 확실하게 청산되었다는 선언인 셈이다.

TV토론이 엎치락뒤치락 혼전이었다면서도 연설을 잘했다고 별별 평가 다 나왔지만, 태풍이 도왔다고도 또 말들을 하지만 출구조사는 TV토론 이전에 표 찍을 후보를 결정했다는 여론이 50%를 넘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의 대선이 후반으로 들어섰다. 지금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또렷하게 다가오지를 않는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기네스에 올랐다는 뉴스다. 이게 무단한 기운이겠는가. 연말의 말춤을 추는 나라를 위한 징후일 터이다. 세계의 역사는 동방의 등불이 아닌 세계의 횃불 하나 타오르고 있음을 특종으로 쓸 것이 아닌가.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면 복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잘 알 것이다. 복선이 그어져가는 모습을 하루하루 즐겁게 감상한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계절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여론조사 그래프가 아무리 들쭉날쭉해 봐야 이미 투표할 사람 정했어가 50% 선을 훨씬 넘었다. TV토론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도 싸이 화법으로 붓을 내젓고 있을 터이다. 그때 말을 실수했다고 후보를 바꿀 사람이 있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때가 되면 완전히 미쳐버리는 사나이가 될 터이다.

오바마가 차린 무대와 우리가 차리고 있는 무대는 감동스러운 장면들이 너무 많다. 오바마의 출발이 케냐 유학생부터이듯이 대서사시의 작가는 멋지고 아름다운 소설의 복선을 저기 저 기기서부터 그었던 것이다.

역사가 어떻게 쓰이는 것인가를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무단한 일들이 함부로, 허투루, 엉뚱하게 말도 안 되는 상식 밖의 것들이라고 성깔 있는 시인들은 다다이즘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어디 그러던가. 무의미를 내세웠던 그것으로 해서 우리 문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내지 않았던가.

부안에 가면 채석강이라던가 하는 책바위가 있다. 책을 쌓아놓은 형국이 틀림없다. 시루떡의 떡이 그렇듯이 가지런하다. 좀 두꺼운 놈도 삐투루 삐지는 것도 있을 법한데 자로 잰 듯 가지런하다. 역사이기에 그렇다. 감정이 눈곱만큼도 제제 할 수 없는 시간의 압축이기에 그런 것이다.

이번 대선의 멋진 잔치 때는 고창의 바람광장에 갈 것이다. 우리 가족들 함께 바람광장에 가서 책바위 전조로 떡시루 안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잔을 들어야겠다. 대통령 당선자 한 사람의 영광이 아닌 역사의 승리일 테니까.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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