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88>살살, 살살 찌씨요
가루지기 <388>살살, 살살 찌씨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15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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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38>

강쇠 놈이 느닷없이 방아고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쿵하고 내려 놓았다. 어엄메야. 주모가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너무 세게 찧었소?"

"살살, 살살 찌씨요."

주모가 이번에는 애원을 했다.

"나넌 살살 찌고 싶은디, 요놈이 안 그러고 싶다는디요. 나넌 어채피 요놈이 시킨대로만 헌깨, 날 원망언 마시씨요이."

강쇠 놈이 중얼거리며 주모가 비명을 내지르건 말건 쿵덕쿵덕 살방아를 찧어댔다. 죽을둥 살둥 찧는 살방아였다. 너 죽고 나 살자고 찧는 살방아였다. 주모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건 말건 죽을 힘을 다하여 방아고를 움직였다.

"죽겄소? 죽겄소? 죽겄으면 죽어보씨요. 내가 그 전에 어떤 계집허고 살방애를 찧는디, 그 계집언 하루밤에 일곱 번이나 죽읍디다.

그러고도 담날 아침에 쌩쌩허게 일어납디다. 죽겄으면 죽으씨요. 얼매든지 죽여줄 것인깨요."

"그만, 그만헙시다. 제발 적선에 나 좀 살려주씨요."

주모가 강쇠 놈의 가슴패기를 밀어냈다. 그렇다고 물러날 강쇠 놈이 아니었다. 주모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하얗게 죽기 전에는 결코 끝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고, 나 죽네."

목구멍으로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던 주모의 몸뚱이가 어느 순간 풀석 갈아앉듯이 힘이 빠져 나갔다. 그렇다고 구름을 타는 낌새는 아니었다. 거시기 놈을 뽑을듯한 아랫녁의 잡아당기는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 이 아짐씨가 참말로 죽었는가?'

순간 강쇠 놈의 등줄기에서 소름이 오싹 솟아올랐다. 그런 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 것이었다. 살방아를 찧다가 사내들이 종종 계집의 배 위에서 숨줄을 놓기도 한다는 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 것이었다. 입담 좋은 사랑꾼들의 입으로도 살방아를 찧다가 계집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일은 없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생기지 못할 일은 없는 것이었다. 사내가 계집의 몸뚱이 위에서 죽을 수 있는 것이라면, 계집 또한 사내의 몸뚱아리에 깔려 죽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죽었소? 아짐씨, 참말로 죽었소?"

강쇠 놈이 나즈막히 물으며 주모의 가슴에 귀를 대보았다. 약하나마 깔딱거리는 숨결이 느껴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끈쩍끈적한 땀기운과 함께 후꾼한 열기도 느껴졌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온기가 풍길리는 없었다.

방아고를 확에 담아놓은 채 강쇠 놈이 잠시 주모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모의 숨소리는 편안했고, 주모의 가슴 봉우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강쇠 놈의 마음도 편안했다. 어쨌거나 세 번이나 살방아를 찧고 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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