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87>낼부턴 하루에 한번씩만
가루지기 <387>낼부턴 하루에 한번씩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15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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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37>

"나만 죽고 이녁은 멀쩡허다면 공평헌 처사가 아니제요. 어뜨케든 그놈얼 죽여보씨요. 나넌 연재의 덥석부리가 젤인줄만 알았는디, 덥석부리보다 열배넌 강허요,이녁언."

"덥석부리가 누구요?"

"연재에서 길손을 털던 도둑놈이었소. 그 놈 방애만 진짜 방앤 줄 알았는디, 이녁 방애가 훨씬 낫소. 찔라면 얼른 찧어보씨요. 곧 닭이 울겄소."

"알았소. 허면 시방부텀 찌요이."

"징헌 것, 징헌 것."

주모가 입으로는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엉덩이를 깝죽거렸다. 그러나 그것이 제가 좋아서 하는 짓이 아니라, 어떻게든 사내를 죽여놓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작정한 계집이 어쩔 수 없이 치는 몸부림이란 것을 모를 강쇠 놈이 아니었다.속으로는 싫으면서도 겉으로만 좋은 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잡놈이 아니었다. 어차피 계집을 극락에 보내기 위해서 찧는 살방아가 아니었다. 하룻밤에도 열 두 번씩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이 계집의 속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극락도 극락 나름이었다. 옹골지게 다녀 온 극락길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맛 있는 음식도 포식을 하고 나면 물리는 법이었다.

살방아 속에 비록 무궁진진한 재미가 있다고 할망정 아랫녁이 뻐근하도록 찧고 난 다음이라면 진저리가 날 판이었다. 천하의 색녀가 아닌 이상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인월 삼거리 주모년이나 젊은 계집년이 밭문서며 돈보따리에 욕심을 낸 체했던 것도 어쩌면 그것들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자기를 내쫓기 위한 술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강쇠 놈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런 엉뚱한 생각까지 하고보니, 거시기 놈도 무심히 시늉만의 방아를 찧고 있었다. 게거품을 물 낌새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집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내가 방아고를 들었다 놓을 때마다 끙끙 앓아댔다. 극락을 가는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이 놈이, 이 천하의 잡놈이 언제 뒈져 나자빠질까, 그걸 기다리는 끙끙이 소리였다.

"어뜻소? 좋소? 끙끙 앓는 것얼 본깨 아짐씨넌 또 존개비요이."

강쇠 놈이 의뭉을 떨었다. 계집의 속내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체 넉살을 떨었다.

"좋소, 참으로 좋소. 헌깨, 이녁도 빨리 끝내씨요. 살방애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만 찧고 살 수는 없잖소. 오널밤 치는 얼렁 찧어뿔고, 내일 밤에 새로 찝시다."

"흐흐흐. 나넌 아짐씨허고 내내 살방애만 찧음서 살고 싶소."

"낼부터는 하루에 한번씩만 찝시다. 제발 적선에 그럽시다이."

"낼 일언 낼 생각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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