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83>한바탕 살풀이로 노곤하지만
가루지기 <383>한바탕 살풀이로 노곤하지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13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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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33>

그것이 비록 거시기가 닳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일이라고 한번 살풀이를 할 때마다 나무 한 짐 지고 삼십리 길을 가는 것 만큼은 힘이 들었다. 그걸 구태여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몇 번의 살풀이만으로도 며칠 동안의 밥값과 사나흘의 잠값은 충분히 해주었다고 강쇠 놈은 믿었다.

주모는 잠이 깊이 든 듯 강쇠 놈이 부시럭거리며 옷을 입고 몸을 일으키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잘 기시씨요, 아짐씨. 약병아리 잘 묵고 가요."

강쇠 놈이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발 하나를 토방으로 내려놓을 때였다. 거시기 놈이 불에라도 데인듯 따끔거렸다.

'이것이 시방 먼 일이랴?'

강쇠 놈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짚세기를 찾아신고 한 걸음 옮겼을 때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당깨. 어디를 도망갈라고? 시방."

킬킬거리며 웃는 주모의 웃음 소리에 이어 거시기 놈이 다시 불에 덴 듯 아팠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거시기 놈의 모가지가 끊어질 듯 욱신거렸다. 그제서야 강쇠 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눈치채고 얼른 뒤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일이 아니었다. 한바탕 살풀이에 몸은 노곤하지만, 혹시나 잠들어있는 사이에 사내가 도망이라도 칠까싶어 주모가 강쇠 놈의 거시기를 실로 오라를 지어 제 년의 팔목에 묶어놓았던 것이었다.

"이것이 시방 멋허는 짓이다요? 얼른 안 풀어줄아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여 강쇠 놈이 와락 화를 냈다.

"방구 뀐 놈이 썽낸다고 멋땜시 화를 내고 그러시요? 잠값 밥값 띠어 묵고 도망얼 갈라고 헌 것이 누군디."

주모가 일어나 앉아 이죽거렸다.

"도망언 누가 도망얼 간다고 그러시요? 소피가 매려서 그랬구만요."

"방안에 요강단지는 뽄으로 들여 놓았간디."

"그나저나 얼른 실이나 풀어주씨요. 아파 죽겄소."

강쇠 놈이 스스로 바지를 내리고 사정했다.

"캄캄해서 잘 풀어질랑가나 모르겄소."

주모가 손으로 실끝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워낙 단단하게 묶어놓은 모양이었다.

주모가 손으로 더듬기만 할뿐 쉽게 풀지를 못했다. 제 놈이 처한 상황도 모르고 계집의 손길이 반가운 거시기 놈이 고개를 쳐드는 통에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아이고, 어매. 나 죽겄는 것."

강쇠 놈의 입에서 저절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제서야 주모가 허둥지둥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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