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381>죽겄소 내가 시방 죽겄소
가루지기<381>죽겄소 내가 시방 죽겄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12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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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31>

'안직은 안 돼, 이놈아.'

강쇠 놈이 거시기놈한테 이르고 발가락을 앞으로 오무리고 뒷구녕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제서야 거시기 놈이 주인의 뜻을 눈치채고 고개만 뻣뻣이 치켜들고 외눈백이 눈을 부릎떴다.

"어쩐디야, 이 일얼 어쩐디야? 내가 시방 죽게 쌩겼는디, 꼭 죽게 생겼는디, 이 일얼 어쩐디야?"

주모가 오징어 썩는 냄새를 입으로 풍기며 두 눈을 하얗게 뒤집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랫녁에서 후꾼한 열기를 내 뿜었다.

"괜찮소? 아짐씨."

강쇠 놈이 주모의 앵두알을 물고 혀끝으로 깔짝거리다가 물었다.

"죽겄소. 내가 시방 죽겄소."

주모가 숨이 넘어갈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라우? 죽고 싶으면 죽어야제라우. 죽고 싶은 디 안 죽으면 낭중에 후회된깨, 죽고 싶으면 죽으씨요."

강쇠 놈이 앵두알 두 개를 이쪽을 물었다 저 쪽을 물었다 하다가, 귓부리 속에 혀를 넣고 후벼댔다.

"음메, 음메. 나 죽소. 나 죽소."

매애매애 염소 울음소리를 내던 주모가 두 다리를 쭉 뻗고는 온 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흐흐, 한번언 죽었고. 강쇠 놈이 싱긋 웃는데 주모가 고개를 사내의 가슴에 푹 쳐박고는 경기들린 아이처럼 떨다가 가만히 자지라들었다.

"죽었소? 아짐씨, 죽었소? 참말로 죽어 뿌렀소?"

강쇠 놈이 주모의 머리를 가만히 치켜들고 들여다 보며 물었다.

"징허요, 참으로 징허요. 내가 그래도 이 사내 저 사내 숱헌 사내를 잡아 묵어 보았소만 이녁겉은 사내는 또 첨이요."

주모가 물기가 촉촉한 두 눈을 배시시 뜨고 말했다.

"어쩌요? 실퍽허요?"

"실퍽허요. 내 생전 이리 기분좋은 꼴은 또 첨이요."

주모가 배시시 웃고는 몸을 내려갔다. 그런 다음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부드러운 명주 수건으로 사내의 거시기를 조심조심 닦아냈다.

'이년얼 시방 죽여뿌리까? 다시는 내 살몽둥이를 탐내고 안 뎀비그로 시방 죽여뿌리까?'

그런 생각이 문득 강쇠 놈의 뇌리를 스쳐갔으나, 화주를 너무 많이 마신 것이 탈이었다. 죽일까 말까 궁리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어수선한 잠자리였다. 그동안 배 밑에 깔았떤 계집들이 서방님, 서방님 부르며 떼로 쫓아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저 년 잡아라, 저 놈잡아라, 하고 험상궂은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고 있었다. 강쇠 놈은 뛰고 또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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