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79>앵두알을 잘근잘근
가루지기 <379>앵두알을 잘근잘근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11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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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29>

강쇠 놈이 혀끝의 앵두알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조금 전 주모의 저고리를 벗겨내면서 앵두알이 유난히 에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처음 방아를 찧을 때야 엉겹결에 찧었지만, 나중에는 잠결에 어거지로

살방아를 찧느라 주모의 몸을 살펴 볼 틈이 없었지만, 기왕에 마음먹고 살방아를 찧기로 작정한 강쇠 놈이었다. 계집의 화덕에 불을 피울 불쏘시개가 어디 쯤인가는 미리 알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방아질이 실증이 난다든지, 거시기 놈이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하려는 낌세를 보이면 그때에 불쏘시개에 불을 붙여 몇 번 쯤 쑤석거려 줄 필요가 있었다. 거시기 놈이 게거품을 물었는데도 계집이 멀쩡한 채 두 눈 똘방똘방 뜨고 올려다 본다면 천하의 잡놈인 강쇠 놈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었다.

아직까지 거시기 놈이 계집보다 먼저 게거품을 문 일은 없지만, 저녁의 주모한테는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될 것이었다. 어떻게든 주모의 입에서 제발 살려달라는 애원이, 돈보따리 안겨주면서 제발 주막에서 나가달라는 사정이 나와야하는 것이었다. 그래아? 며칠간 먹고 잠잔 값을 내놓고 가라는 억지 시달림은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기왕에 대물을 탐내고 덤벼드는

계집이라면 철저히 죽여 줄 필요가 있었다. 다시는 먹여주고 입혀줄 것이니까 함께 살자는 말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제발 나가달라고 사정사정하면서 등을 떼밀려 쫓겨나는 시늉으로 나가야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나중에 얼굴을 마주칠지도 모를 정사령놈한테 할 말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쪽에서 서두르고 나설 필요는 없었다. 또한 강쇠 놈은 알딸딸해지는 화주기운이 온 몸을 녹작지근하게 만들어 꼼짝하기조차 싫은 것이었다. 거시기 놈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놈 좋은 꼴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었다. 주모가 제발 살려달라고 등 떠밀어 내쫓기는 것이 목적이긴 했지만, 하루 이틀 쯤 더 주막에 머무른다고 해서 큰 일이 날 것은 없었다.

단단한 살몽둥이 하나만 잘 붙들고 있으면, 그놈이 먼저 제 풀에 지쳐 흰 거품 빼물고 늘어지도록만 안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이 되었건 모레 아침이 되었건, 주모한테 등떠밀려 쫓겨난 다음에 혹시 정사령놈을 마주치드래도 할 말이 있는 것이었다.

"하이고, 나리도 참, 이놈이 나오고 싶어서 나왔간디요? 주모가 두 눈에 쌍심지를 키고 나가돌라고, 등을 데미는디, 엽전 한 푼 없는 놈이 어쩌겄소? 쬐껴났구만요. 쬐껴났당깨요."

그런 말을 내뱉을 건더기는 만들어 놓아야했다. 그러나 저녁에 당장 실행에 옮겨야할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었다.

강쇠 놈이 이 궁리 저 궁리에 잠겨있을 때였다. 온 몸을 푸들푸들 떨던 주모가 눈에 물기를 담뿍 담고 강쇠 놈을 내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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