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모방범죄
언론과 모방범죄
  • 김선남
  • 승인 2012.11.08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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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납치강도, 묻지마 살인 등과 같은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언론은 거의 매일 폭력이나 범죄와 관련된 보도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폭력이나 범죄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다큐물도 인기를 얻고 있다.

언론은 ‘환경감시기능’을 갖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폭력물이나 범죄물을 다룸으로써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설 수 있다. 또한 폭력물을 소재로 제작되는 드라마는 경쟁사회에 지쳐가는 현대인을 대리만족시키거나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언론은 폭력이나 범죄를 다룰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언론이 폭력을 보도하거나 범죄물을 다룰 때 상업성의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언론은 구독률이나 시청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범죄나 폭력물을 다룰 때 극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선정적인 보도태도에 함몰될 수 있다.

최근 언론보도가 선정성을 더해 가면서 모방범죄가 늘고 있다. 경찰청자료에 의하면, 지난해(2011) 발생한 범죄(181만 5233건)의 약 1.1%(1만 9545건)는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호기심의 원천이 언론보도였다고 한다.

2001년 부산의 고등학생은 영화 <친구>를 본 후 같은 반 친구를 칼로 살해한 바 있고, 2004년 유영철은 영화 <양들의 침묵>을 모방해 여성 20명을 연쇄 살해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사회면 기사를 스크랩하고 영화와 소설을 토대로 알리바이를 만들고 13명을 연쇄 살인한 정남규(2006)사건, 부유층 자녀를 납치한 후 영화 <그놈 목소리>를 모방해 10시간 만에 산채로 유수지에 버린 인천 박군살인 사건(2007),‘야동’에 빠져서 초등학생을 학교에서 납치해 성폭행한 김모군 사건(2010) 등이 발생하였다. 즉, 언론의 범죄가 현실범죄로 재현된 것이다.

전체 건수나 그 수법의 잔인함을 고려해 볼 때 언론을 모방한 범죄는 이미 우려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모방범죄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사회도 모방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 발생하였던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모방한 미국 콜로라도 주 오로라시 극장의 총격사건, <택시 드라이버>의 영향을 받아서 기도된 레이건 대통령의 저격미수사건, <머니 트레인>의 주인공을 흉내 낸 뉴욕지하철 승차권 매표소 화재사건, <아메리칸 사이코>와 <양들의 침묵>을 모방한 살인사건, <매트릭스>를 모방한 부모 살해사건 등 그 예가 적지 않다.

언론의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폭력물에 노출되면 될수록 수용자들은 가상의 폭력을 실제 상황으로 착각할 수 있다. 사회적 학습이론을 제시한 반두라(Bandura)에 의하면, 우리들은 영화나 TV 모델링을 통해서 태도와 감정반응, 새로운 행동양식 등을 획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TV속 폭력은 현실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가능성은 특히 아동이나 청소년 계층에게서 두드러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TV에서 제공된 폭력에 쉽게 빠질 뿐만 아니라 이를 삶의 지침이나 전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TV, 영화 등의 폭력물에 노출된 수용자들은 가해자를 모델링할 뿐만 아니라 폭력기법, 경험, 느낌 등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TV가 제공하는 폭력과정을 여과 없이 수용함으로써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즉, “학습의 장”인 TV를 통해서 폭력을 배우고, 폭력의 규범을 수용하며, 등장인물의 행위를 모델화하게 된다. 이러한 학습효과는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아동이나 청소년 계층,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 문제아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 하루 4시간 이상 매체의 폭력물의 수용하는 사람들(heavy viewer)에게서 모방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언론은 범죄현실을 고발하고 수용자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환경감시자의 틀 속에서 폭력이나 범죄물을 다룬다. 그러나 그 전달방식이 상업성과 맞물리면서 점점 더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언론의 폭력물 제작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용자 특히 청소년의 모방범죄를 줄이기 위하여 미디어 교육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행정안전부(2012)가 전국 청소년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100명 가운데 6명은 성인물을 본 후 ‘성폭력’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주목하여야 할 현실이다.

<김선남(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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