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최고령 호랑이 민화가 이영두 옹
45. 최고령 호랑이 민화가 이영두 옹
  • 송민애기자
  • 승인 2012.11.02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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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할아버지'로 유명한 이영두 옹은 지난 1997년부터 지금까지 약 15년간 560여 점의 호랑이 민화를 그려왔다. 신상기기자 kppa62@
돌이켜보면 참으로 풍진 세월이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가장(家長)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껴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일곱 아이들을 낳은 이후로는 정말이지 하루도 쉼없이 살았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는 흑산도에 들어가 홍어 장사를 하기도 했고 때로는 목공소에 가 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면 거리로 나가 풀빵이나 호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허나 모질고 모진 운명의 굴레 탓일까. 지긋지긋한 가난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를 옥죄어왔다. 그렇게 인생의 시리고 시린 겨울을 온몸으로 맞서며 지나온 지도 어느새 90여 년이다.

그러나 매서운 겨울의 추위가 있으면 따뜻한 봄날의 날씨도 있는 법. 올해로 ‘미수(米壽)’를 맞은 이영두(88) 옹에게는 바로 지금이 찬란한 봄날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듯하게 자란 자식들의 지극한 효성 덕분에 뒤늦게나마 못다 이룬 꿈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남몰래 꿈꿔온 ‘그림 그리는 일’ 말이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학창시절 그림이라면 1등을 도맡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딱히 스승을 두고 배운 적은 없지만 타고난 손재주와 탁월한 눈썰미를 갖춘 덕에 어렵지 않게 그림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꿈보다는 생계가 급박했던 상황이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가장의 책임을 묵묵히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영두 옹은 “이렇듯 인고의 시간을 거친 끝에 비로소 펼치게 된 꿈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옛날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못 다한 공부가 가슴 속 깊은 한(恨)으로 남아, 일곱 자식 만은 모두 공부를 시키고자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홍어 장사며 풀빵장사, 호떡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나중에는 하다 못해 아내까지 길거리로 나가 생선을 팔아야 했죠. 물려줄 유산은 없어도 자식들의 마음에 우리처럼 한을 남겨서는 안 되잖아요. 그렇게 죽기살기로 일을 해 애들 일곱을 모두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공부시켰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만 해도 마흔아홉 번을 다녔을 정도니까요.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다 자라 성심성의껏 효도를 다하니 요즘처럼 좋은 날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웃음)”

특히 그가 결정적으로 다시금 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된 데에는 자녀의 도움이 컸다. 그 중에서도 민화로 유명한 이경숙 화가는 그가 지금의 민화가로 활동하는데 큰 도움을 준 든든한 조력자다. 당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민화 관련 강의를 하던 딸에게서 본격적으로 민화 그리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 지난 1997년 한지에 호랑이 민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 15년간 그려온 민화작품만 해도 무려 560여 점에 달한다.

그런데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작품이 호랑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 민화는 붓 터치가 적게는 1억 번에서 많게는 3억 번을 7일(73㎠×73㎠, 73㎠×140㎠ 2종류 한지) 동안 해야 하는 고된 작업. 그럼에도, 굳이 호랑이를 주 소재로 한 민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랑이는 액을 막아주는 벽사(邪)의 상징이자 권위와 용맹 그리고 풍요와 희망을 상징하는 동물이잖아요. 무슨 일을 하든지 용감하고 용맹스럽죠. 저는 사람도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막힘없이 용감하게 해나가야 그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호랑이의 기상과 용맹스러움을 전달하고 싶어 주로 호랑이 그림을 그리죠.”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제공한 작업실에서 하루에 대 여섯 시간은 꼬박 호랑이 민화를 그린다. 그러다 보니 그의 집은 호랑이 민화 작품으로 도배가 된 상황. 심지어 담벼락에도 호랑이 그림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미 이웃들 사이에서는 ‘호랑이 할아버지’로 소문이 자자하다.

특히나 그의 민화는 노년의 화가가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쳐 더욱 시선을 끌고 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등 다수의 대회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으며, 작년에 전북예술회관에서 열었던 첫 번째 개인전에서는 45점의 작품이 모두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전주시가 선정한 ‘천년전주 기네스’에 이름을 올리는 기쁨을 안기도 했다. 이 옹은 “딸아이 이경숙을 비롯해 스승인 조정애, 김상철 선생의 도움으로 민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무척이나 감사해 이렇게라도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뜨거운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이영두 옹. 과연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눈이 잘 보여야 하고 손이 떨려선 안 된다. 그래서 평소에도 건강관리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편으로, 그동안에는 마라톤을 꾸준히 해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면서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욕심을 버리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으니 건강도 좋아진다”고 전했다.

이제 그의 남은 소원은 단 하나.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민화를 계속해서 민화를 그리는 것 뿐이다.

“어찌 보면 저는 앞으로 살 날 보다 떠날 날이 먼저인 사람이잖아요. 그 때문인지 죽기 전까지 많은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제 작품을 알리고 싶어요. 작품을 통해 이영두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 더 좋은 작품을 보다 많이 선보일 계획이다. 또 올해 동사무소에서 전시한 데 이어 내년에는 전시를 통해 관객들과도 다시 한번 만나고 싶고요. 그게 바로 제 남은 소원입니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제2의 인생을 일구어가고 있는 이영두 옹. 고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겨울을 이겨낸 큰 산만이 아름다운 숲과 바위를 보여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 이영두 옹
◆이영두 옹 걸어온 길

1925 부안에서 태어남

1997 민화를 배우기 시작

2006 제1회 전국동호인국악경연대회 장원

2010 제15회 전주전통공예전국대회 특별상

2011 제16회 전주전통공예전국대회 장원

2012 제5회전국민화공모전 특별상

2012 전주시 부부의날 표창장 수상

송민애기자 say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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