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왕이 되고 싶소? 진짜 왕이 되고 싶소.”
“진짜 왕이 되고 싶소? 진짜 왕이 되고 싶소.”
  • 김승연
  • 승인 2012.11.01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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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도민춘추에 “왕자와 거지를 아는 정치인이 나와야”라는 글을 썼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난 후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관객 1천만 명을 이미 돌파했다. 광해 재임 16년여 동안(광해 8년 2월 28일), 그의 일기에 이런 글귀를 남긴다.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재임 기간 중 15일간의 행적이 사라져 버렸다. 영화 광해는 사라진 15일을 작가의 천재적 상상을 근거로 재구성하여 픽션으로 되살려 낸다.

가짜 광해 하선은 저자 거리의 광대놀이로 서민들의 웃음을 자아내주고 돈 몇 푼 받아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가는 천민 중의 천민이었지만, 진짜 광해를 꼭 빼어 닮았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궁중으로 끌려간다. 왜냐하면 정적들이 광해의 음식에 독약을 넣어 살해하려다 중태에 빠짐으로 왕을 대신해 줄 인물을 찾았기 때문이다. 가짜 광해는 왕이 궁중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국사를 어떻게 다스리는 것을 전혀 모르고 왕위에 앉는다. 그리고 처음에는 도승지 허균이 시키는 대로 앵무새,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그런데 가짜 광해는 시간이 갈수록 왕이 가진 권력이 어떠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힘을 과시해 본다. 그랬더니 먹혀 들어갔다. 그래서 도승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이게 바로 권력이다. 가짜도 진짜처럼 행세했더니 권력이 먹혀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 광해는 임금들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감히 강행할 수 없었던 일들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상식, 아니 평소 생각대로 처리해 버린다. 그랬더니 그게 올바른 정치로 통한다. 억울한 백성은 풀려나고, 정적들은 벌을 받는다. 그래서 영화 광해는 이게 바로 국민이 원하는 뜻이라는 지엄한 메시지를 선포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많은 영화를 보아왔지만, 광해를 감상하면서 연기자들이 던졌던 메시지들을 곱씹으며 감탄을 연발했던 영화는 근래에 처음인 것 같다. 영화 속의 대사가 어쩌면 이렇게 오늘의 정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성토할 수 있을까 싶다. 아니, 현실 정치에 대해 영화로 표현된 대국민의 채찍과 저항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마치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위기일발처럼 주옥같은 대사를 정신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 중 감동을 주는 대사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왕권을 사수하기에 급급한 광해와 동, 서인으로 갈라져 당파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대부들의 마음에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마음이 있을까? 국민을 볼모로 잡고 국민 운운하는 가증스러운 입술들이 가관이었다. 둘째,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가짜 광해는 호패법과 대동법이 적법 절차냐, 합법적이냐를 떠나서 법이란 사대부들에게 편리한 법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어떻게 만드는 것이 가장 상식적이며, 국민들의 생활에 편리한가를 서민 신분으로 겪은 천민생활을 바탕으로 통과시켜버린다. “땅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열섬을 받고, 땅 한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한 섬을 받겠다는데 그게 차별이요.” “그대들이 죽고 못사는 사대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갑절 더 소중하오.” 셋째, 가짜 광해는 명나라에 군사를 파병하는 궁중회의 의제를 다루면서도 임금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성토에 가깝다. “백성들의 목숨을 살려 돌아오게 하시오. 나는 백성들이 중요하오.” 넷째, 가짜 광해로 들통 나자 궁궐을 떠나기 전에 천민 출신 하선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도승지 허균에게 하선의 어머니를 꼭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도승지 허균이 어처구니가 없어 어안이 벙벙해 하니 가짜 광해는 준엄한 어투로 어명이라며 명령을 한다. 다섯째, 서인 사대부들이 중전을 폐위하라고 압박하니 어쩔 수 없이 “중전을 폐위하노라” 선언한 후, “중전이 서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폐위를 해야 한다면, 나도 서인이 아니니 나 역시 폐위하라.”며, 당시 당파 싸움의 원인을 마치 예리한 칼로 살을 오려내듯 지적한다. 여섯째, 도승지 허균은 가짜 광해가 들통이 나자, 가짜 왕을 궁궐 밖으로 내모는 과정에서 하선은 아쉬워한다. 그 때 오가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왕이 되고 싶소?” “그렇소. 나는 왕이 되고 싶소.” “그러면 내가 진짜 왕을 만들어 드리리이다.” 그 때 궁중은 동인들의 반란으로 인해 일촉즉발 위기상황으로 돌변한다. 도승지 허균은 가짜 왕의 오른쪽 가슴에 진짜 왕이 전쟁터에 나가 화살을 맞은 흉터를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가짜 광해는 위기를 모면한다. 일곱째, 마지막 장면에 허균이라는 도승지가 가짜 왕을 세워 국사를 이뤘다는 것이 들통이 나자, 은둔지에 거주하고 있는 진짜 광해를 찾아갈 때 가짜 왕의 승무원 일지를 몰래 들고 간다. 그리고 진짜 광해에게 고백한다. “폐하, 내가 그동안 두 임금을 섬겼습니다. 소인의 목을 치소서. 그러나 제 목을 치기 전에 승무원 일기를 한 번 읽어보시고 목을 치소서.”라고 한다. 진짜 광해는 자신이 국왕의 자리를 비웠던 15일간의 승무원 일지를 읽는다. 그동안 가짜 왕이 국민을 위한 진정한 국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 자신은 그동안 감히 상상도 못하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그 짧은 기간에 해냈다는 내용을 읽는다. 그리고 왕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자아낸다.

이번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후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저런 일을 할 테니 나를 뽑아 달라고 애걸하기 전에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을 꼭 읽어야 하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꼭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들은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가짜 광해가 왕이 무엇인가를 잘 몰랐음에도 진짜 왕보다 더 위대한, 더 훌륭한 정치를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이 꿈꿔 온 대통령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김승연 목사(전주서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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