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65> 내 탱자가 깨져뿌렀소
가루지기 <365> 내 탱자가 깨져뿌렀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31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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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15>

강쇠 놈이 끙끙 앓으면서도 나불대자 벙거지 놈이 뒤로 묶인 손목을 풀어 주었다.

"인자 됐제? 가자."

벙거지 놈이 부축해 일으켰다. 그러나 손이 풀렸다고 걸음까지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서너 걸음 걷다가 덜썩 주저 앉고, 댓 걸음 걷다가 털썩 주저 앉았다.

"미안시럽소. 나리나 이놈이나 오널 일진이 안 좋았는갑소. 이놈언 살뿌리 한 번 잘못 놀려가꼬, 여꺼정 왔고, 나리넌 애먼 놈하나 끌고 오다가 고자럴 맹글았는갑소. 어쩌실라요? 이놈얼 어쩌실라요?"

벙거지 놈의 어깨를 붙잡고 예닐곱 걸음 걷다가 멈추어서서 강쇠 놈이 말했다.

"어쩌긴 멀 어째 이놈아?"

벙거지 놈의 말투에 기가 죽어 있었다. 그걸 눈치 못 챌 강쇠 놈이 아니었다. 저만큼 주막이 보이는 곳에서 아이고, 나 죽네, 하고 유난히 큰 비명을 내지르며 털썩 주저 앉았다.

"이놈도 이판사판이구만요. 영장 나리 앞에서 이놈이 다 불어뿔랑구만요. 애먼 이놈얼 끌고 옴서 나리가 어뜨케 했는지 다 말씸디릴랑구만요. 계집년덜허고 내기헌 죄넌 죄대로 벌얼 받고, 나리가 이놈얼 고자 맹근 일언 다 말얼 헐랑구만요. 사내새끼가 물건 큰 것도 죄가 되냐고 한번 따져볼랑구만요."

강쇠 놈이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사타구니를 부여안고 구를 수 있을만큼 굴러댔다.

그때였다. 주막에서 주모가 나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수록 강쇠 놈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어이, 주모, 이리 쪼깨만 와보드라고이."

벙거지 놈이 손짓을 하자 주모가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왔다.

"이놈얼 함께 부축해 가자고."

"먼 일인디 그러요? 겉으로 보기는 멀쩡헌디, 멋 땜시 떼럴 쓴다요?"

"아짐씨는 시방 내가 생떼럴 쓰는 것처럼 보이요? 내 탱자가 깨져뿌렀소. 사령나리가 발로 차서 탱자 두개를 뽀사뿌렀당깨요."

"탱자가 깨져요? 먼 탱자가 깨졌으까? 시방언 탱자가 나올철도 아닌디."

주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이 서른 남짓 되었을까? 천기가 줄줄 흐르는 얼굴에 눈밑이 거무스름한 것이 사내라면 사죽을 못 쓰고 덤빌 상이었다.

"암튼지 이놈얼 주막으로 옮기자고. 송사넌 진작에 물건너 갔응깨. 흐흐참, 재수 한번 더럽구만."

벙거지 놈이 주모의 도움을 받아 강쇠 놈을 일으켜 세웠다. 양쪽에서 부축을 받은 강쇠 놈이 주막을 향해 절룩절룩 절룩이며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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