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61>그놈이 비록 외눈백일망정
가루지기 <361>그놈이 비록 외눈백일망정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29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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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11>

그런데 주모의 얼굴은 겉으로는 웃고 있으면서도 눈밑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이놈언 어디가든 푸대접이구만. 들고 댕기는 창날이 무서워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들, 병신 알짜리겉은 놈, 허고 있구만이.'

강쇠 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벙거지 놈이 국밥을 가지고 온 주모의 아랫동네를 집적거렸다.

"왜 이러신다요? 불집을 건드려 불이 붙으면 나리가 꺼주실라요?"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벙거지 놈의 손길을 밀어내는 주모의 손짓은 거칠었다. 벙거지 놈이 머쓱한 낯빛으로 수저를 들었다.

'내 생각이 맞구만. 주모가 알랑방구럴 꾼 것언 벙거지헌테가 아니라, 시퍼렇게 날 세운 창날이었구만.'

강쇠 놈이 속으로 씩 웃으며 허겁지겁 국밥을 떠넣었다.

"총각인가, 아자씬가 몰라도 멀 잘못해서 잽혀가까? 운봉관아 사령들이 다른 것언 몰라도 곤장 하나는 잘 친다고 소문이 났는디, 그 모진 매럴 어찌 견딜꼬?"

주모가 김치 한 사발을 더 가져다 주며 말했다.

"나 죄 없소."

강쇠 놈이 고개를 쳐들고 주모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죄도 없는디, 멋땜시 끌려간다요?"

주모가 아예 강쇠 놈 곁에 쭈글트리고 앉으며 눈으로 슬슬 웃었다.

"암내 풍기는 두 계집을 두 번씩 죽여준 것 백이 없소. 누가 먼저 죽는가 내기럴 허자고 해서 내기럴 해준 것 백이 없소. 허다허다 안 된깨, 낭중에넌 계집들이 돈도 걸고 밭문서도 걸고 그럽디다."

"그래? 총각이 두 계집얼 두 번씩이나 쥑였다는 말이요? 요놈으로?"

주모가 벙거지의 눈치를 슬쩍 보며 손을 강쇠 놈의 사타구니로 가져왔다. 그리고 계집 소리에 벌써 기척을 내고 있는 거시기 놈을 잡고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크기도 허네. 누구 껏에 비허면 열 배는 넘겄네. 주모노릇 스무해만에 이런 물건은 또 첨이네."

주모가 벙거지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놈의 얼굴이 땡감이라도 씹은듯이 일그러졌다.

"손 떼씨오, 그놈이 비록 외눈백일망정 아무한테나 껄떡거리지는 않소. 울엄니가 살아계셨으면 아짐씨 또래일 것이요."

강쇠 놈이 눈까지 치켜뜨며 매정하게 내뱉았다. 거시기 놈이 고개를 쳐 든 것이 주모의 손 때문은 아니지만, 주인의 처지도 모른 채 의기양양 어서 오시요, 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놈이 갑자기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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