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59>장국밥에 탁배기라도
가루지기 <359>장국밥에 탁배기라도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28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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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9>

"피바우요? 누가 저그서 피럴 쏟고 죽었다요? 피럴 쏟아도 겁나게 쏟았는갑소이."

"나도 잘은 모르겄다만, 어런덜이 허시는 말씸에 의허면 고려말이라던가? 아지발도라는 왜구 대장이 있었다는디, 그놈이 이성계의 화살을 맞고 죽음서 피를 엄청 많이 쏟아 바우럴 저리 붉게 맹글았다고 글드라."

"아지발돈가 허는 그놈이 등치가 산만했는갑소. 긍깨 피럴 저리 많이 쏟았제요."

"내가 안봤는디 어뜨케 아냐? 등치가 산만했는가 집채만했는가. 일어서그라, 가그로."

벙거지 놈의 말에 강쇠 놈이 몸을 일으켰다.

"나리, 이놈이 꼭 운봉꺼정 가야겄소?"

"안 가면?"

강쇠 놈의 물음에 벙거지 놈이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았다.

"나리도 잘 아시겄제만, 이놈이 잘못헌 것이 멋이다요? 명색이 관아의 사령인깨, 나리도 앞뒤 돌아가는 속내는 짐작얼 허실 것이 아니요? 인월 삼거리 주모가 어떤 여잔가 잘 아실 것이 아니요?"

"모른다, 나넌. 주모가 어떤 여잔지."

"흐흐, 속언 놀놀험서. 빈 말허지 마씨요. 아까막시 본깨, 주모나 젊은 계집이나 나리허고 살얼 맞촤도 열번언 맞춘 사이같습디다. 그것이야 나리 사정이고. 주모 그 년허고 젊은 계집년이 짜고 마천 사는 조선비의 한양길 노자를 털었다길래, 이놈이 가서 찾아준 죄백이 없소.

도둑질언 계집덜이 먼첨 했당깨요. 이놈얼 관아로 끌고 가봐야 송사거리가 되겄소? 글고, 송사럴 헐라면 주모허고 그 계집도 끌고 가야제, 멋 땜시 이놈만 끌고 간다요?"

"일단은 니놈 말부터 들어보고, 그년들도 죄가 있으면 끌고 오면 될 것이 아니드냐?"

"허면 계집들도 관아로 부르기는 헐랑가요? 글다가 만약에 그년덜이 나리허고 아랫녁 맞춘 사이라고 떠외면 어쩔라요? 운봉영장 나리가 나리도 곤장치자고 허시면 어쩔라요?"

"멋이여?"

벙거지가 눈을 부릎떴다.

"아니구만요, 아니구만요. 이불 속에서 벌어진 일인디,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면 되겄제요. 팔언 안으로 굽는다고 영장나리께서 관물 묵는 나리편 들제, 주모편이야 들겄소?"

강쇠 놈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렇게 쉬엄쉬엄 반에 반나절 남짓 걸었을 때였다. 주막이 하나 나왔다.

"나리, 이놈헌테 몇 푼이 있는디, 장국밥에 탁배기라도 두어잔 허고 가는 것이 어뜨컸소?"

강쇠 놈이 뱃속에서 들리는 꾸루룩 소리에 벙거지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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