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巡禮)의 계절 앞에서
순례(巡禮)의 계절 앞에서
  • 나종우
  • 승인 2012.10.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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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길목에 며칠 전 부터 거리에 전에 볼 수 없었던 낯선 선전탑과 현수막이 걸렸다. “2012세계순례대회” 라고 크게 쓰여 있고, 다른 면에는 “아름다운 순례, 홀로 또 함께”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전주에서 첫 순례세계대회를 개최한다는 이야기다.

순례(巡禮)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성지(聖地)를 차례로 방문한다는 뜻과, 성지(聖地) · 영장(靈場)을 예배하며 돌아다닌다’ 는 뜻이다.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이런 의미와 전북이 도데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면서 종교적 행사 정도로 간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전북에서 ‘세계’라는 말을 앞에 내세우고 행사를 치른다하니 도민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세계적인 순례길에는 이슬람 신도들의 순례길인 ‘메카순례길’ 기독교의 순례길인 ‘예루살렘순례길’ 힌두교의 ‘바라나시 순례길’ 불교신도들의 ‘라싸순례길’ 일본불교 신도들의 ‘시코쿠 메구리 순례길’ 등 많이 있다. 그래도 아무래도 순례길하면 우선 떠오르는 단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리게 한다. 이 길은 프랑스 남부의 국경도시인 '생 장 피에 드 포르 에서 출발하여 피레네산맥을 거쳐, 스페인의 여러 지역을 지나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장장 800 여 km의 길을 말한다.

이 길을 다녀온 어느 순례자의 글을 보면 “…그 길에 내려 놓았던 어깨위의 짐들/ 그 길에서 찾게 된 또 다른 나/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게 된 사람들” 이라고 썼다. 또 다른 순례자는 "왜 이 길을 걸었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다. 현실과 멀리 떨어짐으로써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이 길이 끝난다고 해서 끝이 아니며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을 갖게해 주는 길이다. 국적이, 나이가, 목적이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 순례길을 걷는 것은, 내가 또 다른 나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 들은 문명의 이기 속에서 누구나 지쳐 있다. 그리고 나를 잊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최근 몇 년 사이(2002년부터)에 인간이 속해 있는 환경, 신체, 마음, 정신의 모든 국면이 가장 조화스럽고 만족스런 상태를 뜻하는 용어인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인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가 요즈음엔 아예 치유한다는 의미의 휠링(healing)이란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 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순례길에 나서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길은 수없이 많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걷기’의 열풍이 고조되면서 새로운 길도 많이 탄생하고 있다. 올레길, 둘레길, 소릿길, 마실길 등등. 그러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치유의 길 "은 순례길이라고 걸어본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 순례길 가운데 이번에 우리고장에서 찾아나서는 순례길은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로 세계인들에게 새롭게 각인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나” “소통” “화합” 이라는 모든 것을 포함한 종교문화유산의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 전북에는 항상 희망으로 미래를 꿈꾸던 백제시대의 미륵불교, 실학에 바탕을 둔 천주교,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며 새로운 기운을 찾던 동학과 원불교, 전북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개신교 등 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이 모두를 아우르면서 소통과 화합의 상징이다. 이번에 치루는 행사는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4대 교단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루어낸 값진 행사이다. 전체길 240km에는 각 종단의 역사적 의미와 특색 있는 종교문화들이 담겨있고,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걸으며 깊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함께 걷기도 하고 함께 자기도 하면서 ‘내가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종교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 순례길에 나서게 되면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을 만나고, 그 속에 성자처럼 살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 과거의 뼈아픈 역사와, 슬픈 사랑의 이야기, 이 땅의 새로운 정신사를 써내려간 순교의 애절함 등 보는 것, 느끼는 것 모두가 한편의 서사시(敍事詩)로 다가와 가슴을 뭉클하게 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아름다운 순례길에 동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길을 나서면 길이 보인다.-

<나종우(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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