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55>눈빛이 축축하면 아랫녁도 축축
가루지기 <355>눈빛이 축축하면 아랫녁도 축축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24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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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5>

강쇠가 낯빛을 풀고 말했다.

"흐따, 아짐씨도 먼 말씸얼 그리 무작시럽게 허신다요이. 아짐씨도 이놈얼 겪어봐서 알겄제만, 심이 겁나게 안 쎄든가요.

품삯 많이 준다는 부자집 밭얼 갈고 틈이 나면 아짐씨네 밭도 갈아줄란지 어찌안다요? 아짐씨, 사람이 옷깃만 스칠라도 억겁의 인연이 따라야헌다고 글든디, 아짐씨허고 나허고넌 아랫녁꺼정 맞춰응깨, 몇 백억겁의 인연인지 모르겄소. 금가락지 하나에 아짐씨의 눈이 뒤집혔는가, 아니면 원래부터 백여시인지는 모르겄지만, 똥누러갈때 맴허고 칙간에 앉았을 때 맴이 다른 것이 사람종자라지만, 하루밤에 두 번이나 만리장성얼

쌓은 처지에 그리 매정허게 말씸얼 허신다요? 글고, 저 계집 단속 잘 허씨요. 보따리는 내껏이요이. 떠돌이 저 계집헌테 ?겨놓지 말고 눈에 안 띄는 곳에다 단단히 감촤노씨요. 내가 송사를 마치고 나오면 밭문서넌 돌려드리리다."

아랫녁 송사까지 마친 처지에 얼굴색을 변해가지고 덤테기를 씌우고 덤비는 두 계집년을 생각하면, 좋은 말 귀양보낸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모는 붙박이라 쉽게 인월 땅을 뜨지는 못할 것이라는 짐작에 미리 당부를 했다.

"씰데없이 넘의 걱정언, 오지랍도 넓구만이. 내가 어제 나서 오늘 큰 버파간디."

주모가 입술을 씰룩였다.

"저 년이 꼭 도둑년 맨키로 생겨묵어서 노파심에서 디린 말씸이요."

강쇠 놈이 한 마디 남기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두 계집년들의 쏘삭임에 어쩔 수 없이 벙거지의 체면을 세운다고 무명띠로 묶어 끌고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리 험상궂은 관아일망정 없는 죄를 만들어 덮어씌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걱정은 조금도 안 되었다. 그까짓 곤장 몇 대 쯤이야 청상과부한테 홀려 담장을 넘다가 동네매를 맞는 것만 하려니 싶은 것이었다.

강쇠 놈이 막 인월을 빠져나와 운봉 쪽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제법 어른 아름으로 서너 아름은 될 것 같은 냇물이 나왔고, 그 냇물을 가로지른 다리 아래에서 아낙 하나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어이, 임자. 빨래허능가?"

벙거지 놈이 다리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낙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그 웃음이며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계집들의 아랫녁을 판 강쇠 놈의 눈에는 아낙이 사내에게 많이 굶주려 있다는 것이 바로 보였다. 더구나, 처음에는 벙거지를 보던 눈길이 어느 순간 강쇠 놈을 향했는데, 눈빛이 제법 축축한 것이었다. 강쇠 놈의 경험에 의하면 눈빛이 축축한 계집은 아랫녁도 축축

했고, 그런 계집일수록 속고쟁이도 잘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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