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48>저녁에 니가 몸을 여는 것이냐
가루지기 <348>저녁에 니가 몸을 여는 것이냐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18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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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 <85>

"알 겄소. 내가 입얼 다물제요. 허나 덕쇠는 내가 참말로 모르는 일이요이."

"그것이사 하늘이 알고 땅이 알겄제. 니 년이 헌 짓이 아니라면 다행이고."

섭섭이네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썩을 년, 속언 놀놀해가꼬.'

옥녀가 입을 비쭉 내밀었다.

안방마님의 눈초리 때문인지, 아니면 섭섭이네와 아랫녁을 맞추었던 제 놈의 행실 때문인지 이천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별채로는 비깜을 안 했다. 옥녀도 무심한 낯빛으로 밤이나 낮이나 목욕재계 후에 합장을 한 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줄창 읊어댔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면 더욱 큰 소리로 염불을 외웠다.

그런 옥녀를 보고 섭섭이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댁 재물이 탐이 나서 장난삼아 시작헌 일인 줄 알았는디, 참말로 아덜얼 낳아주기로 작정얼 했는갑네, 염불얼 그리 열심히 외는 것얼 본깨."

"내가 넘의 다 된밥에 재럴 뿌리넌 섭섭이네럴 탁헌 줄 아시오?"

옥녀가 도끼눈을 하고 섭섭이네를 노려보았다. 어수룩하게 보였다

가는 무슨 말로 사람의 심사를 건들지 몰랐다.

워낙 당차게 나가 그랬는지, 섭섭이네가 더 이상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하루에 두 번씩 이천수 마누라가 들려가지고, 치하를 했다.

"동숭 정성이 대단허네. 그런 정성으로 불공얼 디렸으면 은대암 부처님께서도 감동얼 허셨겄네. 씨받이란 것이 원래 자석얼 나면 물러가는 것이제만, 동숭이 아덜얼 나면 내가 바깥어른께 말씸얼 디려가지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그로 맹글아줌세."

"아심찬허요, 성님. 이년언 허는데꺼정언 해보겄다고 용얼 쓰고 있십니다만, 어르신이 어쩔랑가 모르겄구만요."

"그 양반도 문 밖 출입이 없으셨으니, 몸얼 축내지는 않으셨네."

"글먼 다행이고라우."

옥녀가 시큰둥히 대꾸했다.

이날밤이었다. 다른 날보다 더욱 정성스레 몸을 씻은 옥녀가 하마하마 달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천수가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고 별채로 왔다.

달이 뜨려는지 동창이 부옇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저녁에넌 니가 참으로 몸을 여는 것이냐? 날이 저물어도 니가 아무 말이 없길래 내가 맘언 놓았니라마는, 어제와 그제 밤에 잠자리는 편안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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