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46>쭉정이럴 천날만날 뿌려보아야
가루지기 <346>쭉정이럴 천날만날 뿌려보아야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17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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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 <83>

만에 하나 어르신이 나 없는 동안에 딴 계집헌테 씨럴 뿌려주었으면 날짜럴 뒤로 물려야헌다고 그럽디다. 빈 쭉정이럴 천날만날 뿌려보아야 싹이 나기넌 애당초에 글렀다고라우."

옥녀가 방패막이부터 단단히 치고 이천수의 눈치를 살폈다. 순간 이천수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틀림없구만. 섭섭이네허고 살얼 맞춘 것이 분명허당깨.'

옥녀가 생각하는데, 이천수가 말했다.

"그런 일언 없었응깨, 걱정허덜 말그라. 나도 사람인디, 자석 하나 보겄다고 논얼 열마지기나 바쳤는디, 그러고도 불공꺼정 디렸는디, 그럴리가 있느냐. 언제라고 했느냐? 합방헐 날이."

"낼 모레인디, 두고 봐야지라우."

"두고보다니, 무얼?"

"시님 말씸이 어르신께서 딴 계집얼 보았으면 내 꿈자리가 사나울 것인깨, 그러면 합방 날짜럴 미루라고 허셨구만요."

"또 미뤄?"

"그것이 쭉정이럴 뿌리는 것보담언 낫제요. 암튼지 오널 낼 밤에 이년이 무신 꿈얼 꾸느냐가 문제구만요. 제발 적선에 어르신이 몸얼 정갈허게 간직해서 이 년의 꿈자리가 순탄했으면 좋겄구만요. 그만 나가 보시씨요. 이년언 목욕재게허고 염불이나 외울랑구만요."

"니가 염불얼 아느냐?"

이천수가 눈을 새치롬하게 뜨고 옥녀를 살폈다.

"시님이 염불허는 곁에서 귀동냥언 했소. 시님 말씸이 염불얼 모르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죽자살자 외어도 된다고 그럽디다.

아, 멋허시오? 얼렁 나가보시랑깨요."

"흐참, 알겄다, 알겄어. 나가면 될 것이 아니드냐? 이거 원, 누가 쥔인지럴 모르겄구나."

"집언 어르신의 집일랑가 몰라도 시방 이 방 쥔언 이 년인깨, 시킨대로 허시씨요. 글고 괜히 맴만 심란헌깨, 모레꺼정언 별채에 얼씬도 허지 마시씨요."

옥녀가 낯색까지 싸늘하게 굳히며 말하자 이천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일어나 방을 나갔다.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여전히 사흘 굶은 시어미상을 하고 섭섭이네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재미가 옹골졌겄소?"

밥상을 내려놓고 나가려는 섭섭이네의 등 뒤에 대고 옥녀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이천수의 태도로 보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분명이 있었다고 믿은 옥녀가 슬쩍 속내를 떠 본 것이었다.

섭섭이네가 흘끔 돌아보았다.

"먼 소리여?"

"아, 묵정밭에 쭉정이 씨럴 받는라 애럴 썼다는 말이제요, 먼 말언 먼 말이겄소?"

"그년 참, 앉아서 천리럴 봤는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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