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자급률 하락이 주는 메시지
쌀 자급률 하락이 주는 메시지
  • 황의영/NH무역 대표
  • 승인 2012.10.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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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 설움 온갖 설움 중에 제일 큰 설움은 배곯는 설움이다. 쌀을 귀하게 여기고 농업을 하늘같이 떠받들어야 하느니라!”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내가 유년기를 보낸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 경제는 매우 궁핍(窮乏)했고 농촌에서는 끼니를 때우기가 힘들었다. 특히 할아버지가 사셨던 구한말(舊韓末)과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시절에는 살기가 더욱 어려웠다고 들었다.

먹지 못해 부황이 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기떡을 해먹고 쑥버무리로 끼니를 때우는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이었다고 한다. 초봄이 되면 식량이 떨어져 장리쌀을 내어 연명하고 가을에 추수하여 빌린 쌀의 1.5배를 갚아야 하니 미국의 경제학자 너크시(Nurkse, R)가 주장한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많은 서민 대중들이 살아가는 최고의 가치가 “어떻게 하면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을까?”였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셨던 그 시절,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정든 고향 농촌을 떠났고 조국을 등지고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떠나갔다고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해방 후 이어진 쌀 부족 현상은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의 개발로 해소될 수 있었다. 꾸준한 품종개량과 영농기술의 발달로 곡물자급도가 형편없이 낮음에도 쌀만은 자급도가 100% 이상을 유지하게 되었었다. 이후 우리는 쌀에 대한 고마움과 그 진정한 가치를 잊고 쌀을 하대(下待)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한 끼 쌀값이 자판기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3백 원에도 미치지 못하니 아예 경제재로서의 가치마저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남기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기 시작하여 지자체에서는 이를 처리하기 위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정을 끌어가는 정책입안자들도 남아도는 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왜 농업에 그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느냐. 부족하면 외국에서 사다 먹으면 되지.”라고 알량한 신자유주의 경제를 부르짖었다. 언론에서도 덩달아 “쌀이 남아도는데 왜 정부가 비싼 보관료를 들여가며 창고에 쌀을 쌓아두고 있느냐? 필요하면 수입해 먹으면 되지.”라고 하면서 국가의 쌀 정책에 대해 비판을 가했었다. 이러한 여건들은 매년 수만㏊의 논을 줄어들게 하는 등 쌀 생산량을 감소시켰다. 최근 농림식품부가 잠정집계한 2011년 양곡연도(2010년 11월부터 2011년 10월까지의 기간)의 쌀 자급률이 83.0%로 전년도에 비해 21.6% 하락하였다고 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실로 하늘이 노래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두려움이 온몸을 엄습해 왔다. “어릴 때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로 회귀(回歸)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가 머리를 스친다. 그렇게야 되지는 않겠지만 염려가 드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극심한 냉해로 쌀 자급률이 66.2%로 떨어졌던 1981년도 이후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2010년산 쌀 생산량은 재배면적이 감소했고 태풍 ‘곤파스’로 인한 단수(段收) 감수 등의 요인으로 전년 대비 62만 톤 줄어들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2010년산 쌀 수요량이 518만 톤으로 전년에 비해 47만 톤 증가했기 때문이다. 쌀 자급률은 생산량을 국내수요량으로 나누어서 계산하는데 분자인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분모인 국내수요량이 많아지면 자급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 등의 기후변화로 인해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한 곡물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축산물 소비선호로 인한 사료작물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급기야 투기자금까지도 유입되면서 국제곡물가격이 최고가를 경신하며 요동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인식변화가 일어났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모두 일어났는데, 수요 측면에서 보면 곡물이 에너지와 결합하면서 곡물의 기본문제가 ‘과잉’에서 ‘부족’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공급 측면에서는 농업생산에 필요한 토지, 물, 비료(인광석) 등 농업자원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대규모 관개농업에 따른 지하수위의 급격한 저하, 토양침식, 사막화, 중요한 비료인 인광석의 한계성 등이 주목을 받으면서 농산물 자체도 다른 지하광물자원과 같이 ‘유한자원’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중장기 수익 목적의 인덱스펀드에 농산물을 광물자원과 같은 유한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농산물지수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식량수급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 불확실하고 국제 곡물가격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식량부족국가는 비관적인 국제 식량수급 사정을 전제로 한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또한, 국내의 농업부존자원을 가능한 한 잘 유지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쌀 자급률 때문에 곡물자급률 20%대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데 이제 쌀마저도 자급이 안 된다면 식량안보에 큰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히 쌀 자급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식량정책이 전환되어야겠다. 악몽과 같았던 식량이 없어 굶주리던 과거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백성들의 배를 곯게 하고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구가한 국가가 없었다는 사실을 정책입안자들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황의영/NH무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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