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44>아랫녁 한번 맞추는데 한나절이
가루지기 <344>아랫녁 한번 맞추는데 한나절이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16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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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 <81>

"달이 뜰 때라. 이틀 동안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갖도록허게. 고단헐 테니 그만 가서 쉬게. 다시 한번 이르지만, 바깥양반얼 조심허게, 부디."

"알겄구만요. 이 년도 고생이 헛되지 않게 헐라고 단단히 작정얼 허고 있구만요."

그런 말을 남기고 옥녀가 안방을 나와 별채로 가자 섭섭이네가 고양이 눈으로 살피며 한 마디 던졌다.

"씨받이헌테 가마꺼정 보내주고, 대접도 그런 대접이 없구만. 그런디도 아덜얼 못나면 염치가 없어서 어찌 낯얼 들꼬?"

"못 낳기넌 왜 못나라우? 가만히 본깨 섭섭이 아짐씨넌 내가 아덜얼 못 낳기럴 바래는 것 같소. 흐나, 걱정얼 마시씨요. 은대암 주지 시님께서 어르신과 이년의 사주팔자럴 꼼꼼이 짚어보시더니, 둘언 몰라도 하나넌 눈 뺄 내기럴 해도 난다고 그럽디다."

"그리만 된담사 얼매나 조까? 어떤 년언 팔자가 피어 좋고, 이댁언 손얼 이어서 좋고."

섭섭이네가 시큰둥한 낯빛으로 말할 때였다. 밖에서 이천수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섭섭이네가 눈쌀을 잔뜩 찌푸리고 문밖을 노려보다가 부시시 몸을 일으켜 나갔다.

"꿀단지가 와서 좋겄소."

섭섭이네가 이천수한테 앙탈을 부리는 소리에 옥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때 씨받이로 들어와 아들은 못 낳고 대신 계집종이 되었다는 섭섭이네의 태도가 이상한 것이었다. 말하는 투가 꼭 시앗 본 마누라 꼴이 아닌가.

'혹시 저것덜이 나 없는 새에 아랫녁을 맞춘 것이 아닐랑가? 두 년 놈 다 잡놈이고 잡년인깨, 더구나 기왕에 아랫녁꺼정 맞춘 사이가 아니던가? 성님이 두 눈 부릎 뜨고 지켰다고는 해도 열 포졸이 한 도둑놈얼 못 잡는다고, 알게 무엇인가? 아랫녁 한번 맞추는데 한나절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눈 ?이고 맞출라면 못 맞출 것도 없잖은가.'

옥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천수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그래, 불공언 잘 디렸냐?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이천수가 옥녀의 낯빛을 살피며 물었다.

"불공이사 잘 디렸지요. 이년이 헐 짓언 인자 다했응깨, 나머지는 어르신이 해보씨요."

"나머지는 내가 헐 일이라? 하먼 그렇제이. 씨넌 원래 사내가 뿌리는 것인깨. 옥녀야, 으떠냐? 만낸 김에 시방 뿌리끄나?"

말끝에 이천수가 바짝 당겨 앉으며 손을 잡았다. 덕쇠놈이나 나무패는 박가의 몸에서 맡아지던 고리한 냄새가 아니라, 비릿한 사내냄새가 울컥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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