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343>달이 뜰 임시에 씨럴 받으면
가루지기<343>달이 뜰 임시에 씨럴 받으면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16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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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80>

"그래요? 어르신이 참니라고 애럴 많이 쓰셨겄소이."

옥녀가 흐 웃었다. 술과 계집 없이는 단 사흘도 버티기 힘든 이천수가 스무 하루동안이나 술 한 모금 입에 안 대고 계집을 품지 않았다면 대단한 각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옥녀는 머슴 박서방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쳤으면 쳤지, 이천수가 주색잡기와 담을 쌓고 살 수는 없으리라는 믿음이었

다.

그런데 박서방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다.

해가 서쪽 산 날망에 설핏 걸릴 무렵에 가마가 이천수네 대문을 들어섰는데, 가마가 온 것을 안 이천수가 차마 밖으로 마중을 나오지는 못하고 사랑방 문을 열고 고개만 기웃이 내다보는데, 얼굴에 살이 피둥피둥 찌고 기름기가 제법 자르르 흘렀던 것이었다.

그런 이천수한테 옥녀가 고개만 조금 숙여보이고는 안방마님을 따라 갔다.

"불공얼 디리느라, 애 많이 썼네. 얼굴이 반 쪽인 것을 보니, 먹새가 시언치 않았던 모냥이었구만. 흐기사 절밥에 비린내가 안 섹이니, 자네 입맛에는 안 맞았는가도 모르겄구만."

안방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이천수의 마누라가 옥녀의 요모조모를 찬찬히 살피다가 말했다.

"괘꽝시런 말심이제요. 명색이 아덜바래고 불공얼 들어 간 년이 비린내나는 음석탐이라니요?"

옥녀가 호들갑을 떨자 이천수의 마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반쪽이 되도록 정성을 들인 자네의 성의를 내가 알겄네. 그래, 스님께 날짜는 받았는가?"

"이 년이 묻기도 전에 이달 열 사흘날이 좋다고 말씸얼 허시등구만요. 알고본깨, 종종 그런 일이 있었든갑만요. 불공얼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달거리 날짜럴 묻고 거그에 맞춰서 날짜럴 정해주셨는갑드만요."

"자네의 그날허고는 맞든가? 열 사흘이면 바로 모레가 아니든가?"

"아침꺼정 서답얼 갈았응깨, 대강언 맞겄구만요."

"대강만 맞아서는 안 되제. 딱 맞아뿌러야제. 이번 한번으로 일이 성사가 되어야제."

"그랬으면사 오직이나 좋겄소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어디 맘 묵은대로 됩디까?"

"그래도 정성이 지극허면 하늘이 돕는 벱이라네. 바깥양반이 자네 오기럴 학수고대허고 계셨었네. 합방 시넌 안 알켜주시든가?"

"달이 뜰 임시에 씨럴 받으면 귀헌 자석얼 얻는다고 허시등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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