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340>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가루지기<340>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14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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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북망산이 멀다더니<77>

아마도 나무패는 사내의 성씨가 박가였던 모양이었다.

“박처사가 죽어라우? 그 남정네가 누군디요?”

“뒷골에서 나무를 자르면서 사는 처사요,우리 암자에 땔나무를 대주기도 하던.”

“헌디,그 남정네가 멋땜시 죽었다요?”

“그걸 어찌 알겠소. 아무래도 마음이 심란하여 들렸더니, 옷을 입은채 죽어있더이다. 그런 박처사님을 보는 순간 느닷없이 보살님의 얼굴이 떠오르지 뭐겠소?”

“해필이면 왜 이년의 낯빤데기가 떠올랐을까요? 이쁘지도 안 헌 상판인디. 거참,별일이요이.”

“보살님의 얼굴이 예쁘지는 안 해도, 사내를 홀리는 기운이 있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색기라고 하지요. 보살니미의 넘치는 음기가 사내의 양기를 잡아먹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잠깐 했소. 미안스럽소, 애먼 보살님을 의심해서.”

“이년이 기분이 겁나게 더럽소만, 점잖허신 시님이 허신 말씀인깨 참을라요. 그너저나 어떤 남정네가 안 되었소. 부처님 전에 나무공양을 했다니, 극락에선 안 가겄소?”

“몸으로건 마음으로건 죄를 짓지 않았으면 극락왕생하겠지요. 보살님이 우리 암자에 들어오신지가 그럭저럭 스무 하루가 다 되어가는 군요.”

주지스님이 가만가만 날짜를 꼽아보는 눈치더니 옥녀를 바라보았다.

“펄쌔, 그렇게 되었는갑소이. 사흘 남았소? 나흘 남았소?”

“낼이 스무하루 째니, 모레는 이부자댁으로 가마가 오겠군요.”

“가마가 와요?”

“이무자댁 안방마님께서 그러십디다. 보살님이 스무하루 불공을 마치는 날 가마를 보내겠다구요.”

“흐참, 별 씨잘데기 없는 걱정얼 다했는갑소이, 짱짱헌 다리로 한 나절만 걸으면 되는디.”

“그것도 정성이지요. 그 동안 애쓰셨소, 나머지 이틀도 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불공을 드리시오.”

즈지 스님의 말에 옥녀가 고개를 발딱 치켜들었다.

“이 년 혼자 천날만날 불공을 디리면 멋헌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살님.”

“절의 주인되시넌 주지 스님께서 나몰라라허시는대, 부처님께서 이 년의 소원얼 들어주시겄소?”

“허허허, 소승은 언제어디서건 중생을 위해 염불을 외웁니다. 보살님께서 그것이 불만이라면 오늘 낼은 소승도 함께 불공을 드리지요.”

“그래 주신다면 겁나게 고맙지라우, 허면 이년언 시님만 믿을랑구만요. ”

옥녀가 그런 말을 남기고 주지의 방을 나왔다. 토방에서 신발을 신는데,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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