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38>또 아랫녁이 꼼지락거렸다
가루지기 <338>또 아랫녁이 꼼지락거렸다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11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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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 <75>

나들이에서 돌아오면 법당에 먼저 들려 하다못해 반야심경이라도 한번 읊고 요사채로 돌아가던 주지 스님이 이날은 점심 공양 때가 다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어째 주지 시님언 꿩꿔 묵은 소식이다요?"

점심공양을 끝내고 옥녀가 공양주보살한테 물었다.

"별 일이요. 나헌테는 아침 공양만 마치고 바로 오신다고 했었는디."

공양주 보살이 암자 아랫 쪽을 흘끔거렸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헌다고, 이래서야 어찌 이년이 아덜 자석 낳기럴 바래겄소?"

"먼 소리요? 그것은."

"아, 쌀얼 한 가마니나 시주로 바쳤는디, 주지 시님께서도 허다못해 염불허는 시늉이라도 해주어야헐 것이 아니요? 요짐겉은 보리고개에 쌀이 한 가마면 열 사람 스무 사람언 목심얼 살릴 대단헌 시주가 아니요? 가만히 본깨 주지 시님이 쌀 한 가마럴 공짜로 묵자는 수작인갑소이."

옥녀가 괜한 시비를 하고 나왔다.

"우리 스님이 그런 분이 아니시오. 아매 모르면 몰라도 큰 절에서라도 부처님 전에 이부자 댁에 손얼 점지해돌라고 빌고 또 빌었을 것이요. 헌깨, 시주쌀얼 공짜로 묵는다는 말씸언 허덜 마시씨요."

"내 눈으로 안 봤는디, 어찌 믿는다요? 시님도 안 계시고 헌깨, 이놈도 절 허고 싶은 맴이 없소. 바람이나 쪼깨 쐬고 와야겄소."

옥녀가 잔뜩 심통이 난 체 얼굴까지 일그러뜨리고 요사채를 나와 뒤곁으로 돌아갔다. 폭포 웅덩이 가에 서서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흔들리는 물결에 뒷골 사내의 얼굴이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또 아랫녁이 꼼지락거렸다.

'헐 수 없는 잡년이구만이. 구름얼 타고 요지경 속얼 귀경헌 것이 어젠디, 또 지랄얼 떠는구만이. 어찌헐끄나. 이 노릇을 어찌헐끄나.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져도 싸디쌀 이놈의 노릇얼 어찌헐끄나.'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던 옥녀가 입술을 한번 지긋이 깨물다가 사내를 찾아갈까, 법당으로 들어가 마음을 삭힐까, 궁리하다가 법당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공양주보살한테는 바람이라도 쐬이겠다고 했지만, 언제 주지스님이 돌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사내와의 일이 어그러져 이부자네 집으로 돌아갈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불공을 들이는체는 해야했다. 그래야 나중에 설령 자식을 못 낳드래도 할 말이 있을 것이었다. 자기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부처님께 절을 드렸는데, 주지 스님의

정성이 부족하여 은대암 부처님께서 자식을 점지해주지 않았다고 변명거리라도 만들자는 속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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