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35> 옥녀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가루지기 <335> 옥녀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10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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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 <72>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옥녀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아짐씨만 좋다면 나도 좋소. 나무만 패고 살아도 아짐씨 한 입 거천언 헐 것이요. 헌디, 씨받이넌 허뜨케 헐 것이요? 아새끼넌 싸질러줘야 헐 것이 아니요? 논얼 열마지기나 받기로 했담서요."

"언제넌 내가 땅 지니고 살았간디요? 그까짓 논문서 돌려줘뿔먼 되제요."

"아짐씨 맴이 그렇다면 나도 좋소. 낼이라도 논문서럴 돌려주고 오시씨요. 비록 천허게 살아도 맥없이 넘의 껏얼 묵으면 안 된깨요."

"알겄소, 그러리다."

옥녀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어차피 싹수가 노란 이부자네 자식을 낳아주겠다고 헛 공사를 하느니, 기운 좋은 사내와 합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 믿었다. 두 번의 살풀이에도 끄떡없는 사내의 힘이라면 고태골로 갈 염려는 안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일얼 각단얼 내놓고 낼이나 모레 올 것인깨, 그리 알고 있으씨요. 아침에 맨키로 이놈이 발광얼 헌다고 암자로 찾아오지 말고라우."

옥녀가 고개를 팍 숙이고 있는 거시기 놈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 움막을 나왔다.

"쪼깨만 지달리씨요. 내가 바래다 줄 것인깨요." 벌떡 몸을 일으켜 바지를 걸치려던 사내가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왜, 왜 그러시오?"

옥녀가 놀라 물으며 얼른 사내의 코 밑을 살폈다. 혹시 코피라도 쏟지 않았는가 걱정이 된 것이었다. 다행이 코 밑은 멀쩡했다.

"괜찮소. 잠시 서늘증이 들었소."

"날도 훤허고, 나 혼자 가도 된깨 아자씨넌 쫌 쉬씨요."

"허면 그럴라요?"

사내가 손만 조금 흔들어보였다.

'저 자구도 고태골로 가는 것이 아닐랑가? 도끼질로 단련된 몸이라도 서늘증이 난 것얼 보면 그럴랑가도 모르겄는디? 씨잘데기 없이 한 이불얼 덮자고 약조럴 헌 것언 아닐랑가?'

옥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다른 사내들처럼 고태골로 간다면 눈물 몇 방울에 썩을 놈의 사내겉으니라구, 하고 욕이나 두어 바가지 퍼부으면서 침이나 퉤퉤퉤 뱉으면 머리 속에서 깨끗이 사라질 것이었다.

다행이 스님은 물론 공양주보살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요사채 방으로 들어 가 잠이나 늘어지게 잘까, 하고 일부러 법당을 외면하고 지나가는데, 머리끝이 쭈볏거리면서 온

몸에 소름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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