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삶을 돌아보며
가을의 문턱에서 삶을 돌아보며
  • 윤진식
  • 승인 2012.10.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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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초입이다. 새해가 시작 된지가 엊그제 같은데 한해를 채워가는 우리의 삶의 시간들은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듯 인생의 한복판을 손살 같이 스쳐간다. 이제 머지않아 산들은 만산홍엽의 풍성한 유채화로 아름답게 채색될 것이고, 들판에는 추수를 마치고 소임을 다한 논과 밭들이 텅 빈 고독감으로 우리를 찾을 것이다. 지친 오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찬찬히 바라다보면 곱고 청명한 가을 하늘은 세상사에 지친 나의 두 눈을 시리게 하며 깊은 하늘 호수로 그윽하게 안내한다. 한해를 살면서 이처럼 하늘을 우러르며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살아온 날들이 얼마였던가!

자연은 이처럼 언제나 그렇게 변덕 없이 세상 사람들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찾아주지만 인간들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살면 살수록 삶의 여유는 점점 없어져 가고, 일탈의 일상들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간다.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 우리의 삶은 더욱 건조하고 각박해 져가며, 많은 사람과의 관계의 풍성함 속에서 오히려 고립감과 단절감으로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훨씬 광포하고 잔인한 사건들로 가득한 뉴스는 세상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 달려가지만 사람들은 반복된 일상 속에서 감각기관을 상실한 곤충들처럼 무감각하게 변해가고 있다. 연일 신문지면을 꽉 채우는 온갖 사건들의 연속들…….신문과 방송은 우리 자신과는 직접적인 대면과 관계가 없었던 정말 생소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세상 속으로 뿜어댄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런 소식들로 우리의 머릿속을 채우게 하는데 우리는 익숙하다.

가을의 문턱에 서서 지금껏 살아온 이러한 일상의 편린들을 꺼내어 사색의 햇빛에 말려본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지만 또한 아픔과 성숙의 계절이기도 하다. 저 산을 온통 갖가지 원색으로 뒤덮을 단풍도 사실은 기온이 내려가 나뭇잎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녹색이 줄어들고, 숨어있던 각양각색의 색소가 드러나면서 만들어진다. 모두를 감동케 하는 그 아름다움이 이처럼 성장 후의 쇠락함의 결과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풍잎이 낙엽이 되는 이유도 다음해를 위하여 수분을 보존하기 위하여 잎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나무 한그루의 한해살이 과정만 살펴보아도 배울 점이 넘쳐난다. 다음 성장을 위하여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그 잎이 다시 거름이 되는 자연의 순환법칙을 바라보면서 우리 인간의 모습을 견주해 본다. 살면서 언제나 ‘더, 조금 더’를 외치면서 욕망조절의 브레이크를 스스로 고장 내버린 채 끊임없이 남의 행복을 희생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볏짚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걷노라면 말없이 피어서 바람에 산들거리는 코스모스 무리를 보는 행운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가을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언덕을 바라보면 무리지어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듬성듬성 무리지어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햇살에 반사되어 나풀거리면 그 소박한 아름다움에 차라리 눈이 부실 정도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에서는 누구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 꽃이 호박꽃이든 할미꽃이든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의 본성은 저 들판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나 가을 국화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꽃일 것이다. 자유분방하고 순수함이 넘치는 들꽃을 바라보면서 어른의 잣대로 규격화하고, 잘 정돈된 장미꽃이 되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이처럼 가을은 우리에게 온갖 결실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결실 후의 쇠락함으로 ‘텅 빈 충만감’을 느끼게 해 주는 사색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가을 속에는 형형색색의 어우러짐이 있고,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이 있으며, 희생 속에 조화의 아름다움이 있다. 저 들판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들꽃들이 모두 잘 다듬어진 화병 속의 장미꽃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듯이 우리 인간들도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이타의 본성을 마음껏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 꽃들의 조화로운 향연장으로 바뀔 것이다.

윤진식<신세계노무법인 공인노무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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