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32>녹두알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가루지기 <332>녹두알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08 15: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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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 <69>

잔뜩 마음이 심란해진 옥녀가 먹던 밥을 주섬주섬 제자리에 챙겨넣고 폭포물이나 맞을까하고 뒤곁으로 돌아갔다. 햇살을 받은 폭포물이 은빛으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천번만번 멱을 감은들 뭐해? 맴이 수렁창인디.'

옥녀가 중얼거리며 저고리 고름을 풀 때였다. 쿵쿵쿵. 도끼질 소리가 들렸다.

'귀끔시럽기도 해라. 거그서 여그가 어딘디, 도치질 소리가 다 들리네이.'

옥녀가 고개를 내저어 도끼질 소리를 털어내고 저고리를 벗으려는데, 또 쿵쿵쿵 도끼질 소리가 들렸다.

'저 자구가 나 들으라고 가차이 와서 나무를 패는 갑네. 못 이긴체끼 한번 가보까? 나무럴 몇 동이나 넴겨뜨려놨는가 가서 보까?'

순간 아랫도리가 후꾼거린 옥녀가 저고리 고름을 매면서 재를 향해 달음질을 쳤다. 그런데 가까이서 들리던 도끼질 소리가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만 넘으면 바로겠거니, 했는데 재를 넘고 나자 또 저만큼에서 도끼질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아짐씨가 올 줄 알았소.'

우통을 벗어젖힌 채 도끼질을 하고 있던 사내가 온 몸을 땀으로 범벅을 한 채 그늘에 앉아있다가 하늘을 향해 흐 웃었다.

"날아가는 참새의 거시기럴 보았소? 웃기는 왜 웃소?"

옹녀가 쫑알거리며 움막으로 갔다.

"좋아서 웃었소, 좋아서."

이내 따라 들어 온 사내가 옥녀를 뒤에서 부등켜 안았다.

"밥얼 묵는디, 아자씨가 떠올라서 목이 메입디다. 밥얼 묵고 체허는 것보담언 아자씨럴 만내는 것이 났겄다싶어 왔소."

"잘 했소. 꿈인듯 생시인듯 새벽녁에 아짐씨럴 보고와서 맴이 영 껄적지근했소. 여그넌 듣는 귀도 없응깨, 실컷 살방애나 찌어봅시다이."

"좋구만요. 안 그래도 그럴라고 왔소."

옥녀가 사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녹두알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사내가 계집을 불끈 들었다가 냄새나는 이불 위에 눕혔다.

"하도 심란해서 멱이나 감을라고 허는디, 아자씨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립디다."

옥녀가 가슴을 열며 중얼거렸다.

"그랬소? 아짐씨, 내가 시방 보고 싶은깨 오시씨요. 빨랑 오시씨요, 험서 죽을둥 살둥 도치질만 했는디, 내 맴이 아짐씨헌테꺼정 갔었는갑소이."

사내가 계집의 아랫녁을 헤집으며 대꾸했다.

"요상시럽소, 내가. 그동안 숱헌 사내럴 만냈어도 아자씨처럼 내 맴이 끌린 일이 없소. 얼렁 들어오씨요, 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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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재 2012-10-09 12:20:31
잘 읽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