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29>옥녀가 단내를 훅 풍기며 사내의...
가루지기 <329>옥녀가 단내를 훅 풍기며 사내의...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0.07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 북망산이 멀다더니 <66>

다음날 새벽이었다. 옥녀가 험상궂은 꿈 속을 헤매다가 문밖에서 들리는 어떤 기척에 눈을 떴다.

멀리 마을에서 닭이 울고 있었다.

'귀끔시럽기도 해라. 비가 올랑가? 먼 닭우는 소리가 여꺼정 다 들리까이.'

어제같으면 새벽불공을 드리던 시간이라 옥녀가 일어날까말까 망설이며 중얼거리는데, 조심스럽게 득득 문 긁는 소리가 났다.

순간 옥녀의 온 몸에 소름이 솟구쳤다. 어제밤에 공양주보살이 산신님이 내려오네, 어쩌네 하더니, 정말 호랑이가 찾아 온 모양이라 짐작하며 하이고, 산신님 나넌 잘못헌 일이 하나도 없소, 어쩌고 중얼거리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그러자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설마 호랑이가 문얼 열고 들어오지는 않겄제?'

옥녀가 생각하며 이불 밖으로 목을 내놓고 문 쪽으로 귀를 댔다.

그러자 다시 문 긁는 소리가 났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짐씨, 아짐씨, 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소리였다. 그것도 사내의 소리였다.

'하이고, 저 자구가 이 새벽에 여꺼정 왔구만이. 옥녀럴 못 잊고 죽을둥 살둥 왔구만이.'

순간 아랫녁이 닳아오른 옥녀가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문고리를 살며시 풀었다.

안에서의 기척을 들었는지, 사내가 나요, 아짐씨, 법당 뒤로 오시씨요이, 하고는 돌아갔다.

옥녀가 소리나지 않게 문을 열고 방을 나와 사내를 쫓아갔다. 법당 뒤에는 제법 깊숙한 바위굴 안에 어린 아이 머리통만한 돌멩이로 만든 부처님을 모셔놓은 제단이 있었다. 공양주보살의 말이 사월초파일에나 칠월 칠석으로만 공양을 바친다고 했다.

"나넌 안 올라고했는디, 이놈이 어찌나 성화럴 부려야제요. 헐 수 없이 왔소."

옥녀가 바위천장에 머리를 안 부딪치려고 잔뜩 허리를 굽힌 채 찾아가자 사내가 허겁지겁 안으며 중얼거렸다.

"아, 새벽이 되어도 이놈이 잠얼 안 깨는 놈헌테넌 빚도 주지말랬다고 안허요. 글고 본깨, 아자씨의 기운이 아직언 짱짱헌개비요."

옥녀가 단내를 훅 풍기며 사내의 살몽둥이를 움켜쥐었다.

"아짐씨 생각이 나서 한숨도 못 잤소. 아짐씨만 생각허면 이놈이 발광얼 허고. 나 혼자 손구락으로 이놈얼 쥑일라다가 아짐씨가 괄세넌 안 헐 것같애서 왔소."

사내가 바지를 내리고 옥녀를 쓰러뜨렸다.

옥녀도 사내와 쓸데없는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