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언론의 선정성
성폭력과 언론의 선정성
  • 김선남
  • 승인 2012.10.02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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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물론 우리사회에 성폭력이 어제 오늘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극악한 성폭력이 빈도를 더해가고 있어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여간 염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2006년부터 성폭력을 5대 폭력의 하나로 간주하고 이에 대비하고 있지만 그 대책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았던 2006년에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772건이나 발생하였다. 정부가 후속 조치들을 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방이 무효다. 예를 들면, 2008년에 1,005건, 2010년 1,105건 등 발생건수가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아동을 대상으로 발생한 성폭력사건을 신고하는 것을 극히 꺼려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실은 더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를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언론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언론이 사회의 ‘창문’ 혹은 ‘거울’로서 뉴스를 선택하여 보도할 수 있는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을 기피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은 사회적 소임을 다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성폭력을 중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언론은 이를 사회적 이슈로 여론화 시킨바 있다. 예를 들면, <김부남>사건을 통해 성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발생하는가를, <김보은>사건을 통해 근친에 의한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등을 기사화함으로써 언론은 성폭력을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시켰다. 최근 들어서는 <조두순>, <김길태>사건 등을 보도함으로써 언론은 성폭력과 관련된 법령을 정비하는 데에도 일조하였다.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최근 언론은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방식이나 형식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에 의하면, 언론은 성폭력 보도를 하는데 있어서 언론은 ‘떼거리 저널리즘’ 혹은 ‘냄비 저널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동성폭력의 심각성이 대두되기 전이었던 2007년에는 아동성폭력 보도건수가 불과 100건-200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길태 사건이 발생한 2009년 이 후 보도건수는 10배나 증가하였다. 최근에도 언론은 이러한 ‘떼거리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였다. 예를 들면, 지난 9월 MBC 뉴스데스크는 38개 리포트 가운데 20개를 성폭력과 관련된 보도에 할애하였다.

특정 기간에 성범죄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하는 것은 언론의 사건 지향적인 특성과 무관치 않다. 다시 말해, 언론은 성폭력사건을 경찰발표, 즉 팩트(fact)에 집중하여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하기 때문에 많은 건수를 다룰 수 있지만 원인을 분석하거나 파급효과, 대책 등을 심층적으로 다룰 수 없다. 이러한 보도 특성의 문제는 성폭력사건을 가해자와 피해자 중심의 단순사건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성폭력사건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중대범죄가 아니라 단순한 강력사건으로 탈색시킬 수 있다.

성폭력 보도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언론의 선정성이다. 성폭력 보도는 통상적으로 선정적인 제목을 달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담는다. <악마들의 소굴마다 아동포르노 있었다(국민일보.2012.9.3)>, <성폭력 피해학생 더 있다”(KBS. 2012.3.8)> 등이 바로 그런 예이다. 이와 같은 보도의 문제점은 언론이 사건의 선정적인 묘사에 치중함으로써 성폭력 사건을 흥밋거리로 변질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언론이 어린이 일기장을 공개하고, 피해자의 신체부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선정적인 보도는 오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언론은 이를 경계해야 필요가 있다. 최근 조선일보가 성폭력사건을 보도할 때 피의자가 아닌 시민의 사진을 올려서 물의를 일으킨 것도 바로 선정적인 접근에 집착함으로써 야기된 것이었다.

언론은 더 이상 아동성폭력사건을 이익을 챙기기 위한 장삿속으로 접근해서는 될 것이다. 언론이 이것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시키고,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때 독자들은 언론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부여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최근 일부 언론인들이 나서서 성폭력보도의 선정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언론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주목할 것이다. 기대되는 바가 크다.

<김선남(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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