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경계에선 워킹푸어
빈곤의 경계에선 워킹푸어
  • 최낙관
  • 승인 2012.09.2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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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권을 노리는 후보자들이 대세를 선점하기 위해 힘겨루기에 한창이다. 특히 추석 민심의 향방이 중요한 만큼 이를 겨냥한 정책마련 등 움직임이 부산하다. 최근 민주통합당은 늦은 감이 있지만 문재인 후보를 대선주자로 결정하고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와의 한판승부를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민주통합당이 아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워킹푸어(working poor)’의 문제, 즉 영세 자영업자 문제 해결을 대선공약 아젠다 1순위로 세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들의 눈과 귀가 일을 해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민, 즉 워킹푸어에게 향하게 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다. 여기에는 분명 노림수가 있다. 기업가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듯 정치가 또한 득표극대화를 추구한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수적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나 일용직, 계약직과 같은 근로빈곤층은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선에서의 승리가 더 이상 달콤하지도 순탄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전 세계 상위 1000명의 재산의 합은 하위 25억명의 재산을 합한 수치의 두 배가 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는 전 세계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위 1% 계층은 하위 50% 계층보다 2000배나 부유하다. 이러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후진국만이 아닌 선진국에서도 심화하고 있다. 유럽연합 통계청에 따르면, 유로존 17개 국가에서 연간 수입이 빈곤한계선인 1만 240유로(약 1540만원) 이하의 인구군은 2006년 전체 노동인구의 7.3%에서 2010년 8.2%로 상승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은 이보다 2배 정도 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워킹푸어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이윤추구적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에서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의 불평등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일찍이 IMF 외환위기 이후 국가는 경제위기의 부담을 서민들에게 전가시켜 왔고 이로 인해 워킹푸어의 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하게 그리고 빠르게 확산하여 많은 사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과 저임금 문제 그리고 나아가 정리해고는 수많은 가장들을 고개 숙인 아빠로 전락시키고 있다. 국가 간 통계를 비교 해봐도 대한민국의 양극화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통계청은 소득불평등의 대표적 기준이 되는 임금격차의 경우, 우리나라 상위 10%인 가구 소득이 하위 10%보다 14배가 많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하다고 알려진 멕시코와 미국보다 심각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OECD국가 중에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임금수준에서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임금노동자 평균의 3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유럽연합 빈곤계층 기준 66.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며 최저임금 또한 3.12달러로 OECD국가 평균 6.44달러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한국의 저임금 계층의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낮은 최저임금이 양극화와 불평등을 가속시켰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지금 화려한 성장의 그늘서 병들어 가고 있는 많은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워킹푸어, 즉 노동으로부터 배신당하는 신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치부했던 워킹푸어의 문제가 가족해체와 같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학교 청소년들의 일탈과 비행은 아주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고 심지어 자살과 범죄로 우리사회는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생들도 공부보다는 삶을 위해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지만 그들은 집세와 식비조자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곤 한다. 이러한 현실이 지속할 때, 워킹푸어의 문제는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악의 축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과제라고 본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논쟁이 개입할 그 어떤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시민과 유권자는 이번 대선을 통해 새롭게 변화될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다. 출사표를 던진 대선 주자들은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등한시할 때, 그 어떤 정권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가슴 속 깊이 새겨야 한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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