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극 ‘춘향아씨’
[리뷰] ­창극 ‘춘향아씨’
  • 이순단
  • 승인 2012.09.1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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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세계소리축제로 도시가 흥겨움으로 요란스럽다. 소리축제 초청공연으로 전라북도립창극단의 ‘춘향아씨’가 창극으로 공연된다는 말을 듣고 창극인의 한 사람으로 매우 흥분되고 기대되었다. 아니 기대보다는 단체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던 나로서는 그런 큰 작품을 올리기까지의 어려운 과정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치 나의 일처럼 생각되어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공연을 벌여놓고 관객이 없던 때를 생각하니 괜한 날씨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공연 날 한반도를 들쑤셔놓은 태풍 ‘산바’의 전야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객들은 모악당으로 입장하였다. 궂은 날씨와 유료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인파가 관람이 용이한 모악당 1층 객석을 메꾸었다. 퍽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울러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 당사자들의 가슴은 얼마나 노심초사 걱정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위로라도 한마디 전하고 싶었다.

“춘향아씨,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의 열녀로 상징된 춘향의 정절을 과연 어떻게 그려 낼까. 그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쓰라린 이별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라는 생각으로 막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웅장한 서곡과 함께 펼쳐진 사랑의 대서사시가 드디어 전개되었다. 흥분되었다, 가슴이 뛰었다, 육십의 중반을 넘은 이 나이에도 여전히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춘향이가 되고 월매가 된 듯했다. 향수, 오래 전의 향수가 그리워졌다.

나뿐만 아니라 창극을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옛날 가설극장이나 열악한 공간에서 몸을 비비대며 구경하던 창극에 대한 향수가 일어 날거라 생각했다. 많은 어떤 물질보다도 이 몇 시간의 감동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순수한 감정으로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다니 참으로 고맙고 위대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별로 활용하지 않던 도창의 도입과 간결한 수성선율의 음악 반주는 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고 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어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재래식의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판소리 계파에 다양성을 느껴볼 수 있는 춘향과 이도령의 도둑 로맨스는 요즘의 시대상을 그려놓은 듯 매우 이채로웠으며 춘향모친의 절규 또한 우리네 부모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원급제를 나타낸 붓춤과 과거장면 또한 흥미로웠다.

향단이와 방자의 연기력과 순발력이 뛰어나 보였으며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월매의 치성대목에 나오는 무당의 지전춤과 경문 외우는 장면은 미구에 접신이 될 듯한 명장면이었다. 그러나 춘향과 이도령에 만남의 근원이 되는 단오그림이 너무 단조로웠으며 신관사또 부임행차에 등장하는 인물설정이 사실적이지 못해 아쉬웠다. 어사출도 역시 긴박함에서 오는 격정적인 표현이 약했으며 특히 빈공간을 메꾸기 위해 의미없이 배우들을 등장시켜 합창하는 모습과 무대극을 마치 마당극처럼 장면전환을 노출시켜 전개될 다음 그림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되어 거슬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창극의 주체는 소리다. 춘향을 맡은 주인공의 소리는 다른 부분에서의 미진한 것들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였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 공력 또한 어느 명창과도 견줄 수 없는 하나의 필살기라 감히 말하고 싶다. 흔히들 연기가 부족하고 기타 부수적인 것들이 미흡해도 소리를 잘하면 된다라는 말이 가설이 아닌 진실임을 확인시켜주는 무대였다. 실로 전북의 판소리와 창극에 위상을 자리매김하고 있는 후배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생각된다.

창극과 판소리를 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인지라 공연 관람에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부끄럽게 생각된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이 자랑스런 후배들에게 이 시대 창극의 우월성을 그리고 가치를 전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이순단 도지정 무형문화재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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