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05>계집이라도 만내 노닥거리고
가루지기 <305>계집이라도 만내 노닥거리고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09.17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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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망산이 멀다더니 <42>

옥녀가 중얼거리며 앞장을 섰다. 운봉에서 찾아 온 사람은 이천수네 머슴 중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은, 행랑채 문간방에서 마누라와 자식을 데리고 아예 살림까지 차리고 있는 박서방이었다.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않았지만, 덕쇠와 함께 가마를 멨기 때문에 얼굴은 익었다.

공양주보살이 차려 준 밥상을 받고 앉아 있는 박서방에게 옥녀가 물었다.

"박서방이 여기넌 어쩐 일이시래요?"

"그것이 저, 덕쇠 놈이 안즉도 안 왔구만요. 주인 어르신께서 무신 일인가 가보라고 해서 왔구만요."

"멋이라고요? 덕쇠가 안즉도 안 갔어라우?"

옥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예, 까막까막 지달리다 오널 점심 때꺼정도 안 오자 주인 어른이 가보라고 시켰구만요. 덕쇠 놈언 어디에 있제라우?"

박서방의 물음에 옥녀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헤어질 때 괜히 손장난을 쳐가지고 놈의 물건을 살려놓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탁배기나 사마시라고 엽전 몇 푼 쥐어준 것도 괜히 그랬다 싶었다. 탁배기 생각에 주막에 들렸다가 주모년과 눈이 맞아 농뗑이를 치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서 사라질 까닭이 없는 것이었다. 아니면, 돌아가는 길에 평소 알고 지내던 과부라도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새 계집을 만나 아래도리를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들었다. 사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많고 많은 것이 계집이 아니던가?

옥녀가 말했다.

"젊은 혈기에 주막에나 안 쳐박혀 있는가 모르겄구만요."

"안 그래도 오늘 길에 주막마다 들려봤구만요. 헌디, 덕쇠 놈언 안 들렸드구만요."

"허면, 어디로 갔제요?"

"그걸 모릉깨 깝깝허제요. 안 그래도 산내꼴짜기에넌 호랭이가 자주 나타나는디, 높고 깊은 지리산 속에 살던 호랭이가 밤이면 내려와서 소도 물어가고 돼지도 잡아묵고 갔는디, 호랭이헌테 잽혀 묵은 것이나 아닐랑가 모르겄구만요."

"설마, 그럴리가 있겄소? 아매 가다가 계집이라도 만내가지고 노닥거리고 있을지 어찌 아요."

"그랬으면 오직이나 좋겄십니까? 제발 살아만 있으면 좋겄구만요."

박서방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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