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얼굴과 부드러운 어조, 바르고 절제된 태도. 그를 음악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곧고 바른 멋을 지닌 정악(正樂)이 참으로 어울린다. 부드러우나 유약하지 않으며 섬세하나 천박하지 않은, 바로 그 깊은 품격이 그의 성품과 꼭 빼닮았다.
지난 6일 전주시 효자동 서부신시가지에 위치한 ‘소리아트센터’에서 만난 전북국악관현악단의 신용문(62·전주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우석대학교 교수) 상임지휘자는 여전히 아정한 멋을 그득히 지니고 있었다. 음악에 대한 곧고 바른 신념으로 일생을 오롯이 국악 외길 만을 걸어온 그. 어쩌면 그가 평생을 국악관현악과 정악의 계승·보존에 힘써온 데에는 닮은꼴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끌림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수십여 년간 교수로, 연주자로, 지휘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그는 지역 국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사군자’처럼, 꿋꿋한 선비정신으로 지역에 국악을 새롭게 꽃 피운 주인공이기에 말이다. 지역에서 판소리의 수성반주 쯤으로 여겨지던 국악관현악을 재정립하며 인식의 전환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이고 판소리로 대두되는 민속악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던 정악의 중요성을 알리며 저변확대에 힘쏟아왔다. 비록 지금도 그 균형이 온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지는 못하지만, 오늘날 지역전통음악이 이만큼 균형적으로 발전한 데에는 그의 공이 컸다.
“제가 1988년도에 우석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며 처음으로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됐지요. 당시만 해도 전라북도는 판소리의 본고장답게 판소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상대적으로 국악관현악과 정악에 대한 인식은 저조한 편이었죠. 시민 뿐만 아니라 국악인들 조차도 국악관현악을 판소리 수성반주쯤으로 여겼고, 정악은 중국음악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우석대에 왔을 때도 일부에서는 ‘또 중국음악하는 교수가 왔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이런 실정을 보면서 국악관현악과 정악운동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다졌죠.”
그의 말마따나 당시 전북에서는 판소리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지원 탓에 전통음악의 양대 축인 정악과 민속악의 균형이 심각하게 어그러져 있던 상황이다. 지역전통음악이 제대로 계승되기 위해서는 민속음악인 판소리뿐만 아니라 국악관현악과 정악에도 관심과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었던 터다.
이에 그는 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면서도 수많은 연주활동을 병행하며 정악에 대한 관객과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었고, 여기에 해설을 곁들임으로써 그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20여 년째. 이러한 그의 정성과 노력이 통한 것일까. 처음엔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차츰 정악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지역국악계에서도 정악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나갔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많은 시민들이 정악에 대해 먼저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가 하면, 처음 썰렁했던 연주무대와 달리 관객들이 경견하게 정악을 감상하는 모습도 종종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정악은 어렵고 지루할 것이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형태의 정악공연과 함께 해설을 들려주다 보니 차츰 마음을 열고 그 진정한 멋과 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폈다.
또한, 그는 전북국악계에서 국악관현악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제고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980년대 당시 판소리 수성반주로만 여겨지던 국악관현악을 새롭게 재조명, 국악관현악의 독자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루는데 온 힘을 쏟아온 것이다.
그 결실로 탄생한 게 바로 도내 최초의 민간 국악관현악 단체인 ‘전북국악관현악단’이다. 도내에 현존하는 국악관현악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전북국악관현악단’은 1988년 12월 창단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해 꾸준히 정기연주회를 갖고 있으며, 국악관현악곡, 협주곡, 판소리 다섯바탕 국악 칸타타, 창작 국악 칸타타 등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통해 지역 국악관현악의 활성화를 앞장서 이끌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연주자들을 발굴하는데도 힘 쏟아, 미래 국악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전북국악관현악단은 그동안 전통음악의 보급과 함께 향토음악의 발굴에도 힘써 왔다. 특히 예술인 육성은 가장 획기적인 사업으로 꼽을 정도다”면서 “전북국악관현악단과 협연무대를 거쳐간 많은 예술인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저마다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오디션을 통해 더욱 많은 예인들을 발굴하고 배출해내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국악관현악의 불모지였던 전북에서 선구적으로 국악관현악운동을 펼치며 새로운 꽃을 피워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제 그의 남은 바람은 단 하나다. 마지막까지도 이 고장에서 국악을 사랑하고 아끼는 젊은 예인들을 부지런히 키워내고 배출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이제 전라북도는 저에게 제2의 고향입니다. 저는 이 고장이 너무나 좋거든요. 정도 많고, 인심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웃음). 평생 이곳에 머물며 음악활동을 하고 미래 국악인들을 양성하는 게 소원이죠. 그래서 정년퇴직까지도 4년이 남았지만, 전주에 뿌리 내리기로 하고 마음 먹고 이곳 ‘소리아트센터’도 지었습니다.”
‘죽리헌(竹里軒)’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소리아트센터’는 그가 남은 평생 지역의 지인 및 제자들과 더불어 음악생활을 하고 싶어 마련한 공간.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특정 계층’만 즐기는 음악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앞으로 소리아트센터에서는 전문가, 아마추어, 동호인, 지역주민 등이 음악, 국악, 연극,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또한, 젊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의 공연을 기획해 무대연주의 기회도 제공할 것이고요. 이처럼 예술을 통해 모두와 더불어 사는 게 제 남은 소원입니다.”
또 다시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 순수한 마음과 순결한 열정으로 세속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주어진 길을 걷는 그가 있어 전북음악의 미래가 더욱 든든하다.
▲ 신용문 상임지휘자가 걸어온 길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국악고등학교 교사역임
중요 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전수자
현, 전북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전주 우석대학교 국악과 교수
사사 김기수, 김성진, 한범수, 이상룡
송민애기자 say2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