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실종의 시대에 언론을 다시 생각하며
언론 실종의 시대에 언론을 다시 생각하며
  • 김영호
  • 승인 2012.09.04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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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언론 현상을 연구하는 언론학자로서 최근 한국 언론의 현실을 보면 우울한 기분을 금할 수 없다. 필자가 교수 생활을 처음 시작하였던 30년 전은 물론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학생들에게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한 동기를 물어보면 기자로 대표되는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대부분 일 만큼 언론의 역할이나 언론인의 사명 등에 대해 매우 진지한 자세를 보였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 학생들은 언론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멀티미디어니 콘텐츠니 영상이니 하는 것들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현상이 단지 대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언론의 본질적인 문제와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기에 앞서 ‘언론이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요즘에는 언론이란 용어와 매스미디어라는 용어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지만 언론과 매스미디어는 엄연히 다르다. 매스미디어가 없던 시절에도 언론은, 보다 정확하게는 언론적 현상이나 행위는 존재하였다. 또한 매스미디어 또는 미디어 중에는 언론이 아닌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소위 언론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대부분은 매스미디어이다.

쉽게 말해 영화는 매스미디어이지만 언론은 아니다. 반면에 ‘언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신문은 매스미디어이다. 그렇다면 방송은? 텔레비전은? 방송의 역할 중 일정 부분은 언론에 해당되지만 상당 부분은 언론이라고 보기에 어렵고 특히 FM 방송이나 케이블TV 또는 위성방송의 채널 중에는 매스미디어일 뿐 언론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란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나 방송이 존재하지 않던 조선 시대에도 존재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언론 삼사(言論 三司)라 하여 사간원(司諫院), 사헌부(司憲府), 홍문관(弘文館)이라는 기구를 두어 제도적으로 언론 행위를 보장하였다. 이들 부서의 공통점은 말과 글로 임금과 벼슬아치들의 잘 잘못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인데 요즘으로 치면 국회, 감사원, 검찰의 기능에 언론의 역할까지도 담당하였던 기구였다. 다시 말해 언론이란 ‘말과 글(言)로서 옳고 그름(是是非非)을 따진다(論)’는 데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서양의 저널리즘(journalism)이라는 개념이 일본을 통해 유입되면서 언론(言論)으로 쓰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론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이 다소 장황하여진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인데,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미디어(매스미디어 또는 멀티미디어)는 매우 풍성하지만 언론은 열악한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에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DMB 등 이름조차 생소한 미디어에 인터넷까지 포함하면 수백개의 채널에 이르는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지만 이들 중 언론에 해당되는 미디어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개콘’ ‘넝굴당’ ‘무한도전’은 언론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는 것은 맞지만 언론의 역할과는 거리가 먼 오락 프로그램일 뿐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미디어 수용자(국민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겠지만)들은 하루 종일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언론 수용자로서 깨어있는 시간은 불과 몇 십분 아니 몇 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언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지하철 등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승객들은 자취를 감추고 남녀노소 구분없이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해도 논리의 비약은 아닐 것 같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지속적으로 위축되어온 제도권 언론의 위상은 스마트폰의 광범한 보급과 SNS의 대중화로 영향력 감소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정보통신 대국으로의 도약이라는 빛의 이면에는 제도권 언론의 추락이라는 그늘을 우리는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데, 즉 제도권 언론들은 변화의 물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SNS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비해 신속성, 신뢰성, 흥미성 등에서 수용자의 주목을 끌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일간신문의 가구당 구독률이 30%대로 떨어진 것이나, 지난 봄 MBC, KBS, YTN의 파업으로 뉴스 진행이 차질을 빚어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파업이 진행 중이란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무감각할 정도로 이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현상은 쪼그라든 언론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언론 실종의 시대’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뾰족한 처방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며, 이런 현상이 지속되다 보면 국민의 여론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결코 언론에만 국한된 문제로 볼 수 없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더해지는데, 실제로 연말의 대선을 앞두고 가벼움이 진지함을, 감성이 이성을 압도하는 조짐을 보이는 것도 언론 역할의 위축으로부터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사목정보> 2012년 9월호에 게재한 필자의 글 중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김영호(우석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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