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하지 않는 웃음으로
셈하지 않는 웃음으로
  • 김완순
  • 승인 2012.09.03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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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 수많은 현자는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조화를 이루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인지 그 방법을 고민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경전, 사상, 철학과 예술 등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는 인류의 지혜일 것입니다.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는 계급적으로는 반상(班常)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돈의 역사와 함께 시작됩니다. 제국주의의 패권이 다른 나라를 약탈해서 잉여가 생기고, 잉여가 생기니 돈의 가치가 커지면서 경제가 발전한 것이 근대입니다.

근대의 가장 강력한 결과물은 자본주의입니다. 냉정하게 행동해서 돈을 버는 것이 합리적인 근대인의 모습입니다. 무성영화「모던 타임스 Modern Times」(1963)에서 몽키 스패너를 든 찰리 채플린이 톱니바퀴와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기계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다 정신줄을 놓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근대의 이성으로 분업과 협업을 통해서 대량생산된 상품은 인류에게 경제적 부를 안겨주었지만, 채플린의 풍자극처럼 인간성 상실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 교육 헌장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 기반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1968년 12월 5일 대통령에 의해 반포된 것입니다.

바쁜 국사 중에도 대통령이 국민의 윤리와 정신세계까지 꼼꼼하게 걱정해준 고마운 헌장입니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암기를 해야만 했었습니다. 민족중흥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국민은 일사불란하게 이해를 못해도 상관없이 힘차게 뛰어야만 했습니다. 민족중흥을 위해서 뛸 수밖에 없었지만 숨 가쁘게 뛰면서 흘려버린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 삼성의 광고가 우리를 세뇌한 세상입니다. 1등이 아닌 대다수는 1등을 기억하면서 충실하게 머슴역할을 하면 됩니다. 1등이라는 목적을 가진 인간이 바로 근대적 인간의 표상입니다.

경제적 부와 인간성 보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는 잡을 수 없는 것일까요. 근대주의에 대한 채플린의 날선 통찰 이전부터 동서 지성사의 대부분은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군자는 도덕에 밝고 소인은 잇속에 밝다.”라는 공자의 말씀에서부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쉽다.”는 성경의 말씀까지, 많은 성현들은 부를 축적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이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경계했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의 문제가 비단 자본주의 체제에만 극한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심각한 상황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분명 변화시켜야만 할 것과 지켜야만 할 가치가 따로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바쁘게 뛰었지만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서로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가족들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모의 권위가 큰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형제자매들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셈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 마음은 웃음이 되어 담을 넘겼습니다. 혈육으로 볼 때 가까운 사람을 피붙이라고 합니다. 피붙이끼리의 갈등이 있다면 그 원인도 대부분이 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이 있는 것을 보면 곧 추석이 가까워 오는 것 같습니다. 올 한가위에는 피붙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셈하지 않고 예전 시절의 함박웃음을 웃었음 합니다. 그 웃음은 세상의 두려움을 작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야.” 영화「도가니」의 대사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입니다.

김완순<교동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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