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최초 음악전용소극장 운영자-작곡가 김광순 교수
43. 최초 음악전용소극장 운영자-작곡가 김광순 교수
  • 송민애기자
  • 승인 2012.09.02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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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순 교수

무릇, 예술의 길이란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같다고 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운명의 굴레. 그것이 꽃길이든 혹은 가시밭길이든 예술가는 덤덤히 주어진 길을 걷는다.

지난 30여년 간 전북의 예술을 선도하며 서양음악의 꽃을 활짝 피운 (사)예술기획 예루의 김광순 대표(60·작곡가·전주대학교 교수). 그에게도 음악은 평생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인연’이자 ‘운명’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음악의 길에 들어서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집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을 접하게 된 게 시작이라면 시작일 테다. 그의 집안은 국내에서도 대표되는 음악 패밀리. 부친인 김홍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박사로 명성을 널리 알린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음악에 종사하는 8촌 이내의 친족만 수백 명에 이를 정도다. 또, 먹고 살기도 힘겨웠던 1950년대 당시 도내에 몇 안 되는 피아노를 집에서 보유하고 있었다니 알만하다. 가히 음악에 대한 조예가 대단히 깊은 음악가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 탓에 어릴 때부터 거부감 없이 음악을 받아들인 그는 이윽고 스스로에게 주어진 운명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1950∼60년대만 해도 남자가 음악을 전공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먹고 살기도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성장과정에서도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자랐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소위 엘리트 교육을 받은 셈이죠.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아직도 음악을 놓지 못하고 있네요.(웃음)”

그렇게 서울대학교와 세종대학원을 거쳐 불가리아 소피아뮤직아카데미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후에는 탁월한 감각과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작곡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흩어져 있는 음의 세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데 일가견이 있어, 금세 중앙무대의 주목을 받으며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폭넓은 중앙무대에서의 활동을 뒤로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향인 전주를 찾았다. 늘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 가득했던 만큼, 이 고장에서 음악세계를 펼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활동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전북은 서양음악의 불모지라 불릴 만큼, 양악에 대한 문화적 토양이 너무나 척박했던 상황. 유독 전통음악의 뿌리가 단단한 탓에 서양음악은 좀처럼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탓에 그는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시도할 때마다 번번히 거대한 벽과 부딪히며 쓰디쓴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포기를 모르는 열정의 사내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맞봐야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전북음악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맡아 헌신적으로 예술활동을 펼쳐왔다.

이러한 그의 노력의 결실이 바로 도내 최초 음악전용 소극장 ‘예루’와 종합예술기획단체인 ‘(사)예술기획 예루’다.

“당시만 해도 음악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나 공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어요. 음악가들이 공연장이 없어 공연을 하지 못하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러한 상황들을 보면서 음악 전용 소극장을 만들어 음악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소극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해 선보임으로써 지역 예술의 폭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이에 그는 마침내 1987년 7월 전주시 중앙동에 소극장 예루를 개관하고 예술기획 예루를 출범하며 전북문화예술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특히 소극장 예루는 전북에서 처음으로 생긴 음악전용 소극장이어서 더욱 큰 화제를 낳았다. 지역의 예술인은 물론 중앙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까지 찾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며, 그 당시 지역예술인들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소극장 예루를 중심으로 해 음악, 무용, 오페라, 뮤지컬 등 무대공연만 560여 차례에 걸쳐 기획·실행했으며, 초대전시, 기획전시, 대관전시는 물론 월간 문화예술정보지인 ‘전북예술마당’을 발간하고, 각종 문화예술 강좌 및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음악을 모체로 한 예술공연활동과 교육활동 등을 역동적으로 수행해왔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활동방향을 재정립해 소극장 운영보다는 뮤지컬, 오페라, 칸타타, 뮤직드라마, 어린이뮤지컬 등 기획공연에 힘을 쏟으며 지역예술에 새로운 동력을 부여하고 있다.

“소극장 예루에서 정말이지 수많은 공연을 진행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나 전북삼성문화회관, 그리고 각 대학교에 공연장이 생기며 소극장 예루가 서서히 자리를 잃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00년대부터는 하드웨어인 소극장 운영 대신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고자 주제나 테마를 가진 자체 제작 기획 프로그램에 무게중심을 옮겼죠.”

최근에는 지역문화 정체성 찾기에 초점을 맞춰 지역의 역사와 삶의 문화를 담아내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지역 시인들의 작품에 곡을 붙여 발표하거나, 아동문학가의 작품을 창작동요로 만들고, 지역을 소재로 한 뮤지컬과 오페라를 만드는 것도 이러한 ‘지역문화 정체성 찾기’의 일환이다.

“세상이 빨리빨리 돌아가니 다들 잊어버리기 바쁜데 그것을 기억하고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죠. 지역에서도 이전의 소중한 것들은 잊은 채 새로운 것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최근 몇 년째 지역을 소재로 한 칸타타 공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른 세대에서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요. 실제로 다음주 화요일(4일)에 공연하는 ‘백양촌 신근 선생 추모 음악회’도 그의 정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마련한 무대입니다. 아이들이 훌륭히 자라야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 교육에 온 힘을 쏟았던 그의 신념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자리죠. 지역의 소중한 것들을 음악을 통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이게 앞으로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왕성한 창작음악활동으로 음악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명곡들을 탄생시킴은 물론, 다양한 음악적 도전과 실험으로 지역예술계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 김광순 대표. 오늘날 그가 남긴 혁혁한 족적은 전북 음악사에 찬란한 빛으로 남을 테다.

김광순 대표 걸어온 길

1952년 전주 출생

1970 전주고등학교 졸

1978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졸(학사)

1982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음악 석사)

1997 Bulgaria Sofia Academy 박사과정 수료

1998 한국 예술인총연합회 공로상

2005 제16회 전주시 예술상

전주대학교 예술문화연구소 소장 역임

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장 역임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현재 전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사)예술기획 예루 대표(전라북도 전문예술법인)

송민애기자 say2381@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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