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1)
대화의 기술(1)
  • 문창룡
  • 승인 2012.08.0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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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약해지지 않는 바이러스가 두 개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감기 바이러스이고 다른 하나는 옆집 바이러스다. 아무리 좋은 백신을 개발한다 해도 감기 바이러스는 또 다른 변종을 만들어 내며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옆집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로는 감기 바이러스보다 더 고약하다. 감기 바이러스는 몸을 아프게 하지만 옆집 바이러스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옆집 누구는 1등을 했다더라.” “무슨 대학에 들어갔데.” “영어를 어찌나 잘 하는지 외국인하고 낄낄대며 농담을 하는 수준이래.” “방학동안 과외를 해서 자기 엄마한테 옷을 한 벌 사주고 그것도 모자라 용돈까지 주더래. 정말 효녀야.” 사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옆집 바이러스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가며 자녀를 괴롭히다가 다른 가족에게 옮겨가기도 한다. 글쎄 옆집 남편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마음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상처를 준다. 이때 가족 구성원들은 단절이라는 패턴으로 방어를 하지만 옆집 바이러스는 ‘비판’이라는 무서운 신종 공격 무기를 만들어 낸다. 옆집 바이러스가 간접적이라면 비판은 직접적인 공격이다. 돌려 말하는 것을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일이 이쯤 되면 가족 간에 심각한 갈등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가족 구성원들의 말이나 행동에 상식이나 논리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정을 떠나 학교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바이러스는 이래서 무섭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가족이 길을 나섰다 하자. 차가 밀리는 시가지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모처럼의 해방감으로 남편은 차의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차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아내는 좀 천천히 가줄 것을 요구했다. 남편은 아내의 반응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모처럼의 휴가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차의 속력을 줄여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생겨났다. 차의 속도 문제로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목적지로 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쳐 버렸다. 아내는 즉각 반응했다. “내비게이션을 보고 있지 않았어? 나는 분명히 내비게이션이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라고 하는 것을 들었는데 당신은 못 들은 거야?” 사실 아내가 차의 속도를 줄여줄 것을 요구할 때 내비게이션에서도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말에 반응하느라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건성으로 들었던 것이다.

차는 목적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말을 이어갔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어떡해? 갈 수는 있는 거야. 어쩌자고 차를 마구 달릴 때 다 알아봤다니까.” 이때 뒤에 앉아 있던 아이가 반응했다. “아이 짜증나. 그만 하세요. 괜히 휴가를 따라 나왔네. 친구들이랑 노는 게 훨씬 나을 뻔 했어요.” 순식간에 차 안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그렇다. 누구도 이 가정에 사랑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내는 남편의 실수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았다. 호흡을 같이 하며 “당황했지? 다음 톨게이트까지 12km만 가면 돼. 그곳을 빠져나가서 차를 돌려오면 어떨까?”라고 말했더라면 이 가정의 휴가 분위기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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