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장군의 개선문을
홍명보 장군의 개선문을
  • 진동규
  • 승인 2012.08.07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림픽 출전 64년 만에 백 번째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기사가 나를 어리벙하게 했다. 백이라는 숫자가 크고 차 있는 것은 분명한데 거기에 걸맞은 큰 울림이 내 둔감한 신경의 들보를 치는 데는 좀 그랬다.

모기를 쫓아낸다는 새빨간 제라늄보다 더 향기로운 금·은·동의 찬란한 꽃밭을 가보기로 했다. 펄럭이는 태극기보다 더 뭉클하고 향기로운 꽃밭을 찾기로 했다.

지난 4일 런던 올림픽 펜싱 남자 단체전이다. 칼싸움은 유럽의 기사들만 했던 것은 아님을 멋지게 보여준 한판이었다. 일찍이 신라의 김유신은 칼이 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말에서 졸았다던가?

버선발로 쫓아나온 천관녀 앞에서 사랑하는 말의 목을 쳤다지 않은가. 죽고 사는 고비를 함께했던 말의 목을 내리친 칼은 생사고락의 인연을 끊은 것만이 아니었다. 천관녀와의 끈만도 아니었을 터이다.

나물 캐던 바구니에 반짝반짝 이슬을 따 담던 LA올림픽의 서향순은 가히 신궁이었다. 내림인 것을 어쩌랴. 고려말의 황산대첩이다. 군산 앞바다에서 최무선에 대패한 왜, 야음을 틈타 계곡을 거스르려니 매복을 하고 있던 이성계 장군, 산 너머의 달을 끌어올렸다. 그래 지금의 남원시 인월면이다. 장군이 날린 화살이 투구의 이마를 명중하고 옆에 있던 거란족 장수 퉁두란 시위를 떠난 화살은 입을 떡 벌리고 있던 왜장 아기바투의 입천장을 꿰뚫었지 않은가. 글쎄 아기바투 온몸이 구리로 싸여 있어 도대체 화살이 박히지 않는 자라 하지 않던가. 양궁의 김수녕은 꽃바구니가 두 개다. 도라지 도라지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다.

동계 올림픽도 질세라 수정바구니 챙겨 나섰다. 효자가 되려면 눈꿍에 딸기를 따와야 한다는데 천이경은 수정바구니를 나란히 들고 와 효녀가 되지 않았던가. 기막힌 겨울 꽃밭을 챙기지 않았던가.

가만있자 그때가 언제더라. 피겨의 여왕이 되어버린 김연아를 무어라 불러야 할 것인가. 이제 학생, 막 교생실습을 하고 있는 연아를. 국민 효녀에 합당한 호칭을 꽃밭의 의전실에 주문해야 할 일이다.

향기는 향기대로 번져가는 속도가 엄격하고 색채는 색채대로 이건 잣대도 없다. 낭만주의쯤 해서 ‘만셀’의 잣대를 대입시키자는 훼방꾼이 또 나온다.

아! 너무 급했다. 진정해야지. 중요한 어른 한 분을 모시지 못했다. 올림픽 메달꽃에 취했나 보다. 메달꽃은 그렇게 마약성이 있다고 이르고 일렀건만 내가 먼저 취해 버렸다.

손기정 선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백림에서, 백림까지 먹하고 붓 챙겨갔다가 석 줄짜리 붓자국 가슴에다 그려 넣은 태극기 그린 죄로 녹슨 구리모자도 못 받아온 손기정 선수, 그 청동꽃의 나래를 나비들은 무어라고 할까. 지금도 그 꽃향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나치들이 준비하는 전시장이 있었다는 것을 그 나비들은 안다. 백림 올림픽 미술전 유일하게 한 분, 그림을 보내신 분이 있었다. ‘진환’ 화백 일본유학을 끝내고 고향인 전라도 무장에 가서 그린 그림을 전시하신 화가 말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화가였다. 그런 분을 내가 아는 것은 아무래도 오늘을 위한 특별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진환 화백은 우리 할아버지다.

아아! 잠깐만, 지금 히딩크도 어찌어찌 넘을 수 있을까 그렇게 괴로워하던 문제가 끝났다고 한다. 지금 우리 홍명보 장군이 개선문을 짓고 있단다. 벽돌이라도 몇 장씩 들고 오셔야 할 것 같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이다. 프리킥은 형벌이다. 신사에게 형벌이라니 하면서 화내면 안 된다. 프리킥 휘슬을 불면서 골을 허용하는 형벌을 그냥 웃어주자.

온두라스랑 브라질이랑 할 때는 정말 부러웠다. 프리킥 같은 것 말고 선수 퇴장 그것은 형벌이 아니었다. 형장의 나체 형벌이었다. 한 사람으로 모자라 대표급 꽃낭구 뿌리째 뽑아내는 것을 보았다.

꽃밭은 여기까지가 아름다움인 것을. 우리는 함께 가꾸어야 하니까.

진동규<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