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기념비 문화재 지정, 하청사 복원
동의기념비 문화재 지정, 하청사 복원
  • 김상기기자
  • 승인 2012.08.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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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조선동의기념비를 문화재로 지정하고, 하청사를 복원해 구국의사들의 영위를 봉안하자.”

1928년 일제의 살벌한 감시 속에서도 이희봉, 권영근, 민영석, 최동근 등 34인의 도내 유림들의 발의에 의해 ‘하청사’가 창건된다. 하청사는 (구)한말에 일제에 항거한 최익현, 임병찬, 오계엽, 박재규, 박재구 등 5인의 지사들을 향사하는 사당이었는데, 불행히도 한국전쟁 중 불타 없어졌다. 그 하청사 바로 앞에는 1930년 ‘해동조선동의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기념비는 하청사에 배향된 분들의 공적을 기록한 것으로, 고종의 다섯 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직접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하청사는 불탄 뒤 복원되지 못했지만, 동의기념비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이 동의기념비를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제 겨우 82년 밖에 되지 않은 석조물을 문화재로 지정한 예가 거의 없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이강이 직접 글을 쓴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이강은 항일독립투사들과 접촉해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만주 안동에서 일본경찰에게 발각당해 강제로 본국에 송환되고, 이후 여러 차례 일본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해 항일의 기개를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다.

동의기념비의 문화재 지정과 함께 하청사 복원에 대한 문제제기는 예전부터 지적돼 온 사안이다. 한말 의병항쟁의 촉매제가 된 병오창의의 주역 최익현과 임병찬을 배향한 최초의 사당이란 면에서 볼 때, 불탄 뒤 60여년을 그대로 방치해 둔 점을 부끄럽게 알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정읍시는 올해 들어 동의기념비 주변 담장과 대문을 정비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오랜 세월 방치된 것에 비한다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하청사 복원과 관련된 구체적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또한 안내문에는 아직도 임병찬의 대마도 구금생활이 2년이고, 거문도에서 단식으로 자결했다는 등의 잘못 전해진 내용들이 그대로 적혀 있어 관리의 아쉬움을 남긴다. 임병찬은 5개월여 만에 대마도에서 나왔으며, 초기에 단식을 감행했으나 후에는 식사를 했다는 것이 지금은 정설로 굳어져 있는 상태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정돈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상기기자 s4071@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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