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찬의 거문도 후견인 원세학
임병찬의 거문도 후견인 원세학
  • 김상기기자
  • 승인 2012.07.23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병찬이 쓴 ‘거문도 일기’에는 원세학(1858-1938)이라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한말에 무과에 급제해 남대문 수문장을 지낸바 있어 거문도에서는 흔히 ‘원 수문장’으로 통한다.

1910년 나라가 망한 후 일본인들의 거문도 이주가 부쩍 늘어났다. 천혜의 어장이었기 때문에 어민들이 많이 들어온 것이다. 일본인들은 각종 이권을 차지하려 들어 한국인과의 분쟁이 잦았고, 이때 원세학은 거문도어업조합을 설립해 초대 조합장으로 활동하는 등 섬사람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서 싸웠다.

애국지사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 1914년 임병찬이 거문도에 왔을 때도 각종 편의를 봐주고, 말벗이 돼 주었다. 거문도 일기에 원세학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그를 위해 시까지 지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지금도 거문도에는 원세학의 후손이 살고 있어 당시의 일을 증언해주고 있다. 1915년 8월 임병찬은 건강이 몹시 안 좋았는데, 뱃속에 무엇인가 주먹만 한 것이 생겼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원세학의 손자 원용삼(78)씨는 “그게 요새말로 하면 ‘암’이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임병찬이 감독관으로 참여한 거문진은 모두 해체됐지만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 다닌 초등학교 지으면서 거기 있던 주춧돌을 가져다 썼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그런 걸 잘 몰라요.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정리가 됐으면 좋겠는데.”



김상기기자 s4071@domi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