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보육정책
흔들리는 보육정책
  • 최낙관
  • 승인 2012.07.22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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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부터 시작된 2세 이하의 영아에 대한 무상 보육이 심하게 흔들리며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악화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이를 수면에 부상하게 한 근본적인 문제의 촉발은 자치단체와의 합의 없이 예산안을 무리하게 처리한 정책결정과 밀어붙이기식 선택의 강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자체가 재원의 거의 50%가량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보육은 사실 열악한 지자체에는 커다란 짐일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재원고갈로 인한 중단위기가 일부 지자체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 올해 안에 거의 모든 지자체가 이 문제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미 이전에도 ‘무상급식’과 관련한 복지논쟁이 우리 사회에서 치열하게 전개된바 있었다. 지금은 ‘무상보육’이 마치 그 후속편처럼 복지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복지에 과연 ‘공짜’를 의미하는 무상이 있을까? 우리가 납부하는 조세가 복지시스템을 작동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재원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납세의무를 다하고 그에 대한 권리로 국가에 안전과 복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영유아정책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상보육이라는 이름으로 미래의 성장 동력인 아이들을 키우는 우리 부모들과 보육종사자들의 손을 벌리게 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초등학교 중학교의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이해하듯 영유아보육이 학교교육처럼 전액 조세로 실행된다면, 이는 ‘의무보육’으로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 논란이 되고 있는 보육의 문제와 갈등은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즉 작게는 상실감의 문제이자 크게는 정부실패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표면상으로는 보육문제가 지자체 재원위기로 촉발된 사안이지만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제기되었다는 사실이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포퓰리즘으로 비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복지가 정치의 시녀가 아님에도 무상보육이 혹 향후 정권의 향배를 가를 득표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 기획재정부는 무상보육 전면지원에서 선별적 지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며 보건복지부도 시간연장 보육료 일부를 유료화하는 등 보육지원 체계에 대한 개편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보수성향이 짙은 새누리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0~2세 영아뿐만 아니라 지난 4.11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공약했던 0~4세 영유아 무상보육을 차질 없이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어 본 사안이 단순한 당정 간 협의의 불협화음인지 아니면 확고한 신념에 기초한 정책결정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흔들리는 작금의 보육정책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대안은 과연 있는 것인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 전라북도의 경우에도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생색은 정치권이 내고 설거지는 지자체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추가소요액 458억(국비 247억, 도비 92억, 시·군비 119억)은 열악한 우리 지역의 실정을 감안할 때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만일 어린이집 현원이 증가할 경우 보육료는 더 늘어날 수 있어 더욱 그렇다. 어렵지만 단기적으로 추경을 통해 부족분을 마련한다 해도 이는 궁극적인 대안이 아니라고 본다. 중장기적으로는 공공성이 높을수록 국가가 담당하고 지역적 특성과 여건을 고려한 급여와 서비스의 제공은 지방사무로 전환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방소비세분을 ‘사회복지세’로 전환하고 중앙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한 국고보조율의 상향 조정 또한 해결과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육문제 이전에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이다. 첨단 산업유치를 위한 대규모 인프라 구축이나 대운하 건설 등과 같은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사업이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키우는 보육보다 과연 얼마나 더 중요한지 반문해 봐야한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국정과제로 부각시키는 한편, 보육정책에 혼선을 가중시키는 현재의 상황을 멋대로 연출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어 과연 우리가 그 국정 철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큰 틀에서 복지는 소비의 대상이 아닌 투자의 대상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복지는 늘리는 것도 어렵지만 줄이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얘기하는 “졸속”이 아닌 “숙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상황논리”나 “힘의 논리”에 따른 근시안적 제도도입은 그 때문에 가능한 배제 되어야 한다. 여전히 성장의 그늘 속에 남아있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독선적 의사결정에 많은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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