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은 가능한가?
‘저녁이 있는 삶’은 가능한가?
  • 김우영
  • 승인 2012.07.16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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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TV드라마가 시청률 4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40%의 시청률은 좀처럼 넘어서기 힘든 기록이다. 가족 간 채널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이야기 소재가 혼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기 주말 드라마의 계보는 3대가 함께하는 대가족과 다양한 인물들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3대가 하는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갈등 구조 속에서도 훈훈한 가족애를 확인해 나가는 이야기의 전개가 일반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녁 시간 귀가를 재촉받고 귀가하여,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고, 식사 후에 드라마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저녁 풍경은 좋아 보인다. 이것은 과거에는 매우 진부한 일상의 장면이었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누구나 원하지만, 주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아마도 모든 가족이 모여 저녁을 함께하고, 가족애를 나누는 풍경은 모든 세대가 희망하는, 그러나 현실화되기 힘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주말 가족 드라마 시청률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가족이 뭐여, 밖에서 채이고 아파도, 집에 돌아오면 위안이 되는 것이 가족이지”라는 할머니 강부자의 대사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면서도 아프게 한다. 우리에게 지금 그러한 의미의 가족이 있는가? 1인 가구 화하고, 하루하루의 무한 경쟁에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일반 서민들에게 드라마의 저녁 풍경은 실현 불가능한 로망일 수 있다.

드라마의 초반 전개에서 며느리 김남주는 시부모와 시댁 식구가 없는 고아를 결혼상대로 선택한 선망의 대상이다. 우리의 노부모들은 대체로 독거노인으로 지낸다. 장거리 출퇴근, 치열한 경쟁과 저녁 회식 문화는 집에서의 저녁 개인 시간을 배려하지 않는다. 우리의 고교생 아이들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한밤중에 귀가한다. 대학생들은 대체로 원룸에서 혼자 지낸다. 맞벌이 부부, 야간 근로만이 아니라, 야간 영업도 늘어난다. 새벽에도 도심의 술집은 불야성을 이룬다.

개인 시간과 가족이 있는 저녁 풍경, 밤에 호롱불에 의존하고,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우리의 기억 속엔, 가난하든 부자이든, 저녁에 집에 귀가해야 했고, 집에 한 가족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던 일상의 풍경이 이젠 아른거리는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도 경제 성장을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달려왔던 삶의 목표가 GNP 2만 불의 고소득 시대에 더 멀어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녁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며, 가족이 모여 훈훈한 가족애를 나누는 풍경은 눈앞의 신기루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보인다.

최근 대선 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면서, 저마다 정책 비전을 담은 슬로건을 발표하고 있다. 슬로건이란 단 한 줄의 카피로 해당 후보의 삶, 가치 정책을 응축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슬로건은 단시간에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의 이름을 각인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원하는 삶과 가치를 잘 읽어내야 한다. 후보자의 슬로건을 통해서 후보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순식간에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슬로건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저녁이 있는 삶’, ‘사람이 먼저다.’ 등이 눈에 띤다. 각 슬로건은 각 진영이 야심 차게 내세운 것으로 호소력이 있지만, 최근 직장인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하고 있는 슬로건은 ‘저녁이 있는 삶’이다. 우리의 꿈은 무엇일까? 사람을 우선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아마도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의 꿈과 사람을 우선하는 정책의 목표를 응축하고 있다. 그동안 돌볼 겨를이 없었던 개인적 삶과 가족, 일상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시대의 흐름을 적절하게 담아내는 표현으로 보인다.

이제는 경제성장, 경제 민주화, 통일, 진보 같은 추상적 거대담론보다는 우리의 삶의 목표와 양식을 변화시킬 구체적 담론을 가지고 경쟁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경제성장, 효율성, 무한경쟁,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왜곡되어 온 ‘좋은 삶’에 대한 담론을 이제라도 회복해야 한다. 개인적 삶, 가족, 일상의 가치들은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희생해도 좋은 재화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꿈이자 희망이다. 하루하루의 무한 경쟁에서 채이고 아파도, 돌아가면 위안이 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주는 것이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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