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은 한국인 기개의 상징
최익현은 한국인 기개의 상징
  • 김상기기자
  • 승인 2012.07.16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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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을 벗으라고 해도 벗지 않고, 또한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밥마저 거부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개입니다. 노구의 몸으로 의병을 일으키고, 대마도까지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으면서도, 자유로운 조국을 못보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는데, 그렇게 나라를 위해 돌아가셨는데 무슨 소리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치백 회장은 ‘최익현은 한국인의 기개를 보여주신 분’이라고 말한다. 1906년 8월 무더위가 한창일 때 최익현과 임병찬은 대마도로 유배됐다. 도착한 두 사람은 실 잣는 일을 가르치는 제사 전습소에 갇히게 된다. 당시 대마도에는 정치범을 가둘 만한 감옥도 없던 터라 그곳을 임시 수용소로 사용했다. 일본은 한국 민중 사이에 이름 높은 최익현을 그대로 두면 일본에 대한 반발심이 커져 의병활동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최익현을 비롯한 주요 의병 지도자들을 아직 감옥도 완성되지 않은 대마도로 끌어다 두었던 것이다.

“당시 대마도는 초라한 곳이었어요. 형무소도 마땅치 않아 고생도 심했죠. 붙들려 하루 만에 나온 사람이나 사형당한 사람이나 기본정신은 같겠지만, 최익현은 기상과 기개로는 단연 최고였던 분이셨습니다.”



김상기기자 s4071@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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