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을 준비하며 최익현이 머물렀던 삼우당
의병을 준비하며 최익현이 머물렀던 삼우당
  • 김상기기자
  • 승인 2012.06.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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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익현이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내려온 뒤 머물렀던 삼우당. 뒤편 바위에는 이곳이 삼우당이었음을 알리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목동마을에는 현재 ‘삼우당’이 있던 터가 남아 있다. 삼우당은 탐진최씨의 터로, 최제학이 스승 최익현을 모시고 의병 거사를 준비했던 곳이다. 최제학은 순창으로 무기를 옮길 때는 상여로 꾸며 일제의 눈을 피하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를 기려 당시 사람들은 “최익현이 없으면 최제학도 없고, 최제학이 없으면 최익현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다. 최제학은 이 외딴 곳에서 수십일 동안 최익현을 모시고 사방으로 연락을 취하며 의병을 준비했다. 이곳에는 당시 얼마나 보안에 신경 썼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제학의 조카되는 최경상이 최익현의 곁에서 잡다한 시중을 다 들었는데, 그는 일본인 몰래 밤마다 음식을 나르는 일도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전해준 갈비짝을 수십리 밤길을 걸어 운반한 최경상은 새벽에야 집에 들어와 잠이 들었다. 하지만 보안을 위해 아내에게 마저 최익현과의 관계를 숨겼던 게 화근이었다. 밤마다 없어지곤 하던 남편이 등허리에 피까지 묻히고 들어와 자고 있자, 누군가를 죽였다고 생각한 부인이 그만 자결하고 만 것이다. 병오창의라는 역사적 사건은 주목받지 못하는 이런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상기기자 s4071@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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