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월가
수학과 월가
  • 김인수
  • 승인 2012.06.0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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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은 유로화의 붕괴와 그리스의 유로화 탈퇴문제로 금융공항이 예측되며 세계경제의 도미노현상이 우려되어 각국의 경제전문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유로존이 스페인 문제까지 터지면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경제가 흔들거릴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이제는 스페인으로 확산할 우려까지 팽배하고 있다.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70% 수준으로 그리스의 160% 수준에 비하여 낮지만, 국채금리가 6% 수준이고 국채발행에 실패하는가 하면, 경제성장 전망도 마이너스로 어두운 상황이다. 인구 4000만 명에 1인당 GDP 3만 달러의 스페인은, 인구 1000만 명에 GDP 2만 달러인 그리스와 비교할 때, 파괴력 면에서 단순히 비교해도 6 배나 크다. 이것은 오래전에 뉴욕의 월스트리트 붕괴를 생각나게 하고 있다. 당시 미국의 경제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는 시장의 도미노 현상으로 말미암아 세계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수천 조 달러가 공중 분해되는 현상으로, 각국이 그 해법을 찾기에 부심하였던 경험이 있다. 믿기 어렵지만, 당시의 월가는 한 개의 수학 공식으로 말미암아 붕괴되었다고 한다. 국내외 금융공학자들과 수학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이 얘기가 퍼져 있다. 수학 공식 하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키운 불씨였다는 것이다.

퀀트(Quantitative의 줄임말)란 고도의 수학과 통계지식을 이용해서 투자법칙을 찾아내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적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이를 토대로 투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대형증권사에는 박사급 퀀트들이 몇 명씩 일하고 있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리스크(위험)를 즐긴다. 왜냐하면 손실 위험이 큰 만큼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이것은 금융업을 종사하는 사람들의 불문율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증권은 언제 특정한 집 가격이 떨어질지, 돈 빌린 사람이 언제 실직해서 돈을 못 갚게 될 지 예측하기 어려워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침을 흘릴 만큼 호재이지만, 이른바 그 채권의 불확실성 때문에 성큼 달려들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금융을 전공한 수학자(퀀트)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 불확실성을 줄일 방법이 없나를 생각한 끝에 나온 결론으로 여러 개의 채권들을 혼합하면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부채담보증권(CDO)이란 상품을 만들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확실성은 있었다. 부채담보증권이란 500~1000개의 모기지 채권을 묶어서 새로운 채권을 만든 것이다. 문제의 공식은 2000년 데이비드 리 라는 중국계 금융수학자(퀀트)가 저널 오브 픽스트 인컴(The Journal of Fixed Income)이란 학술지에 발표한 가우시안 코풀라 함수(Gaussian copula function)이다. 이 공식이 나오기 전까지의 월가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채권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든 이른바 가우시안 코풀라 함수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해결사로 등장했다. 가우시안 코풀라 함수를 이용하면 불확실한 수많은 모기지의 상환 가능성을 계산해서 가격을 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월가의 금융수학자(퀀트)들은 가우시안 코풀라 함수를 만들었고 투자자들은 이것에 열광했다. 실제로, 불확실성이 커서 거래가 힘들다던 부채담보채권에 가격을 매길 수 있게 되자 엄청난 시장이 형성되었다. 더구나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신규 자금이 월가에 몰려들면서 부채담보채권이란 신상품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부채담보채권시장은 2000년에 2750억 달러 정도였지만, 퀀트들이 만든 이 공식으로 절정에 달했던 2006년에는 4조7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런데 하나의 수학 공식에 의존했던 부채담보채권시장은 결국 붕괴했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등 월가 투자은행의 몰락을 불러왔다. 이것이 붕괴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이 공식을 만들면서 중요한 가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공식이 만들어진 가정은, 부채담보채권시장이 번창할 때의 모기지 채권이 부도날 위험에 대한 시장 가격은 최근 10년간 부동산 활황기 가격을 기초로 한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때의 위험성을 간과한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과 붕괴로 주택가격이 떨어지면서, 가우시안 코풀라 함수로 산정한 부채담보증권가격은 아무 의미 없는 수치로 변했고, 그 자산은 60%나 폭락했다. 월가의 금융인들이 그만 탐욕에 눈이 멀어 그 함수의 함정을 무시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재에도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그들이 만든 금융공학펀드가 12개나 있으며 대부분이 아직도 수익률은 마이너스에 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다. 수학자가 일을 냈으니 해결도 수학자가 해야 하는 결자해지(結者解之)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질서를 다시 구축하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요구되고 수돗물의 마중물과 같은 투자를 통해서 다시 기존의 흐름을 찾는 데는 무너진 신용과 도미노의 현상과 같은 일을 해결하는 새로운 금융공학의 기법과 수학적 도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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