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내가 경찰서장이라면
  • 진동규
  • 승인 2012.06.03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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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치켜들고 길을 건너던 학생이 꾸벅 절을 한다. 몇 학년이나 되었을까. 2학년이나 3학년쯤 되었을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저렇게 길을 건너라고 가르쳐 주셨을 테지. 교실에서 하듯 ‘저요, 저요.’ 앙증맞은 제비새끼들 노란 입을 벌리듯 손을 높이 들고 길을 건너라고 그렇게 가르쳤겠지.

학교 앞 풍경이다. 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너는 모습이 당당하기만 하다. 안전이 절대 보장되었다. 믿음이 확실하다. 선생님 말씀이 있었지 않은가.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이 앞에서 누가 경적을 울릴 것인가. 멈추어 서준 자동차를 향하여 꾸벅 인사를 할 뿐 운전자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는다. 기다려 주는 배려에 감사할 뿐이다.

문득 저 아이들의 믿음이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손을 들어주고 ‘감사합니다.’ 목례를 주고 길을 건너면 운전석에서는 흐뭇한 화답을 보내지 않을 것인가. 마음속에 일어나는 잔물살 같은 잠깐의 흐뭇함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하자. 저 아이들처럼만 해 보자. 저 아이가 내게 전해준 잔물살 같은 파장을 세상에 전해 줄 의무가 있지 않은가. ‘건널목이니까 네가 멈추어서는 것은 당연한 거야. 무엇이 고맙다는 거야. 그건 네가 지켜야 할 규칙이야.’ 하면서 뻔뻔해지면 그건 대결의식이다. 서로 점잖으신 아저씨께서, 노숙하신 할아버지께서 ‘고맙습니다.’ 손을 들고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목례까지 건네고 지나가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아이들은 잘하는 인사를 왜 어른들은 못하는 것일까? 못할 일이 없다. 항시 시작은 한 사람부터다. 그 일을 누구 쳐다볼 일이 아니다. 나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 아침 출근길에 승용차끼리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다. 앞에 가던 차는 고급승용차였고 뒤에서 받은 차는 그보다 낡은 차였다. 앞차 운전자가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먼저 내렸다. 잠시 후 뒤차 운전자도 내렸다. 그 옆 버스 안의 승객들은 잠시 긴장하며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쯤 되면 보통 큰소리로 험담이 오가게 마련이기에.

그런데 머리가 흰 중노인이 앞차에서 내린 젊은 운전자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그만……. 어떻게 해 드리면 좋겠습니까?” 의외의 장면에 사람들은 놀라며 숨을 죽였다. 자동차를 살펴본 앞차 운전자는 “아, 그냥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며 차에 올랐다. 물론 차가 눈에 띄게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유쾌한 장면이었다. 그보다 더 좋은 일은 마침 버스에 젊은 학생들이 많이 탔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그날 하루 괜히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삭막하고 거친 세상에 그런 멋진 일도 생긴다는 것을 보며 안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와 지위를 떠나서 예의를 갖추고, 잘못을 시인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면허시험을 치르고 운전면허증을 교부받는다. 내가 경찰이라면 면허시험 문제에 꼭 몇 문제 넣고 싶은 게 있다. 면허시험 한 번 치르고 나면 다른 건 몰라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예절은 깨우치고 나오는 시험은 없을까? 이를테면 경적을 울리지 않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콩쥐가 골목길을 운전하는데 팥쥐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콩쥐는 경적을 울렸을까. 울리지 않았을까 같은 문제 말이다. 경적을 세 번 울린다./ 까치 우는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 소리를 짧게 낸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어떤 차가 내 어깨를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 뒹굴고 병원에 입원부터 한다./ 억지 구토를 하고 뇌사진을 찍는다./ 목에 붕대부터 하고 링거를 꽂고 웃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이런 유의 문제로 절반쯤 해서 면허시험 치르는 일이 즐거운 일이게 하면 얼마나 우쭐해지겠는가. 이제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 줄 일을 찾아야 한다. 교통문화를 정규 수업시간에 가르쳐야 한다.

진동규<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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