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400여 학교 폐교해야할 판
전북 400여 학교 폐교해야할 판
  • 소인섭기자
  • 승인 2012.05.25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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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당 학생수가 20명이 안 되거나 전체 학생수가 120명 이하인 초등학교·중학교, 180명 이하인 고등학교 등 도내 미니학교 400곳이 문을 닫았다. 도내 전체 학교의 절반이 넘는 수이다.’

이는 가상이지만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중인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실행이 되면 가상은 곧 현실이 된다. 교과부안대로라면 시골학생은 기본권 중 하나인 ‘교육받을 권리’를 포기하거나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전국이 들끓고 있다. 특히 농산어촌과 벽오지가 많은 전북과 전남·강원 등은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고 전국적인 반대투쟁과 법 개정 저지운동도 점쳐진다. 전북도의회는 철회촉구 결의안을 채택, 대통령과 교과부에 전달키로 했다. 논란이 일고 있는 교과부의 시행령은 무엇이고 이것이 미칠 파장은 어디까지 인지 짚어 본다.

◆학급당 학생 수 최소 20명

교과부가 지난 17일 입법예고한 개정령(안) 가운데 교육 붕괴가 우려되는 항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소규모 초등학교의 통학구역(중학교는 중학구)을 인근 적정규모 학교의 통학구역 및 중학구에 포함해 학교선택권을 확대했다. 보호자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전학절차 간소화와 교통편의 제공이 들어 있다. 또 학생수가 줄어 최소학급 기준인 6학급 미만의 학급 편성이 이뤄진 중학교는 학생의 보호자가 학교를 선택(입학·전학)할 수 있도록 6학급 이상의 인근학교의 중학구에 포함시켰다.

둘째, 학년별 1학급을 원칙으로 초등학교·중학교는 6학급, 고교는 9학급을 최소 적정규모 학급으로 했다. 각급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최소 20명 이상이 되게 했다.

이밖에 교육감 관장 사무인 통학구역 업무와 공·사립학교의 설립과 경영 권한 등을 강제하거나 기본권한을 훼손, 교육자치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농산어촌 학교 직격탄

문제는 소규모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통학구역(중학교는 중학구)을 인근 적정규모 학교(소위 잘나가는 학교)로 범위를 넓혀 전학을 자유롭게 하고 적정규모 학교 육성을 위해 학급수 기준 조항을 신설한 것은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농어촌학교와 소규모학교가 많은 도내 실정상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전북지역 전체 초·중·고교는 759개다. 이 가운데 농산어촌 학교 비율이 60.1%(456곳)에 달하고 학생수 60명 이하인 학교는 초등학교 187곳, 중학교 68곳, 고교 5곳으로 전체의 34.3%이다. 이번 개정령안에서 제시한 최소 적정규모 기준에 들지 못하는 학교는 학급수 기준(초·중 6학급, 고교 9학급 이상)으로 초등학교는 419곳 중 58곳(13.8%), 중학교 208곳 중 86곳(41.3%), 고교 132곳 중 34곳(25.8%)이다. 학급당 학생수 기준(20명 이상)으로는 초등학교 257곳(61.3%), 중학교 70곳(33.7%), 고등학교 4곳(3%)에 달한다.

결국, 교과부 안대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일부 개정되면 도내 통폐합 대상학교(6학급 미만, 급당 학생수 20명 미만)는 초등학교 260여 곳, 중학교 100여 곳, 고등학교 40여 곳 등 모두 400여 곳에 달한다. 이는 도내 전체 학교의 절반이 넘는 52.7%에 해당한다. 특히 소규모 학교가 몰려있는 농산어촌은 쑥대밭이 된다.

◆전국적 반대투쟁 일 듯

교과부 방침에 즉각 반응이 나타났다. 도교육청이 지난 21일 철회를 주장한 데 이어 22일에는 전교조가, 23일에는 교육자치시민연대와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가 개정을 반대했고, 24일에는 전북교총이 즉각 철회입장을 밝혔으며, 25일 전북도의회는 급기야 시행령(안) 철회촉구결의안을 채택했다.

도교육청은 교과부가 농산어촌 작은 학교를 강제 통합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교육청은 학교선택제는 구도심과 농산어촌 작은 학교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고 특히 공동통학구역은 작은 학교에서 큰 학교로의 선택만 보장돼 작은 학교가 위기에 몰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이상으로 정한 것은 OECD국가가 학급당 학생수를 25명 이하로 정해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역행해 결국 콩나물 교실을 심화할 것이란 것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도농간 교육환경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켜 작은 학교의 자연 통폐합을 유도하겠다는 발상이다”며 21일 열린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는 농촌의 폐허화를 걱정했다. 이들은 “정부는 귀농을 지원하고 농촌일자리 창출 등을 격려하고 있으면서 농산어촌 공동화의 가장 큰 원인인 교육문제를 외면하는 이 같은 학교 없애기는 농산어촌을 아예 폐허로 만들겠다는 것이냐”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농산어촌 교육을 포기하고, 되는 곳에만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국가가 교육에 대한 책임성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전교조 전북지부는 “초·중학교에 학교 선택권을 부여하면 잘나가는 학교로 쏠림현상이 나타나 서열화가 우려되고 전학절차를 간소화하고 통학버스를 제공해 이동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농산어촌 소규모 지역에서는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전북교총은 탁상행정을 지적하고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을 주문했다. 교총은 “교과부가 제시한 기준은 도시 위주의 학교 편성기준으로는 적절할 수 있지만 농산어촌 지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경제논리만 앞세운 것”이라면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중심기능을 해 온 학교가 줄어들어 지역공동화 현상과 전북인구의 유출이 가속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때문에 학교 존치 기준과 교원 배정 기준을 도시지역과 농산어촌지역을 구분해 지역의 실정에 맞는 정책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조형철 도의원은 25일 “농산어촌 지역경제를 황폐화시키고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다”며 긴급발의해 개정령(안) 철회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지난 1982년 시작된 학교 통폐합은 교과부가 시행령을 고쳐 완성하려 하고 있으나 전북은 물론 전남과 강원으로부터 저항을 받고 있다. 전남지역 전체학교의 63.9%가 대상이고 강원도는 전북과 비슷한 절반 정도이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은 위기감과 함께 반대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전교조 전북지부가 전국적 반대투쟁을 선언했고, 교육시민연대는 전국 농산어촌 지역의 연대를 통해 반대운동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네트워크는 전학거부와 교육파업으로 맞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소규모 학교에 대한 문화적 가치와 효율성 논쟁이 뜨겁게 전개될 전망이다.

소인섭기자 isso@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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