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박서보
화가 박서보
  • 이흥재
  • 승인 2012.05.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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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박서보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아버지 (Father of Korean Contemporary art)라고 타이틀을 썼다. 박서보의 삶은 개인의 역사이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역사이다. 그는 평생 남과 다르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술회했다. “절대로 누구의 영향이 없어야 자기 작품이다.”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내가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 ‘박서보 사단’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팔순의 원로화가이지만 작업에 대한 열정은 어느 젊은 작가 못지않다. 1931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82세인데도 새벽 2시 이전에는 잠을 잔적이 없다고 한다. 그것도 알츠하이머와 심근경색과 뇌경색을 앓고 난 뒤여서 건강이 예전 같지 않고 언어가 어눌하다고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특강을 할 땐 우리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쳐났다. 1시간 반 예정했던 특강이 2시간 반이나 이어지는 동안 겨우 한두 번 단어를 잘 생각해내지 못한 정도였다. 국립현대미술관 특강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박서보는 스무 살 무렵에 6.25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그 당시 동창이나 동갑내기들을 먼저 보내고 아버지 역시 잃고 난 뒤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가난은 오히려 창조의 어머니였다. 문제는 가난을 어떻게 극복해내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라 강조했다. 심지어 마땅히 잘 곳이 없어 홍익대 수위실에서 잠을 잤으며, 물감이 없어 간장으로 드로잉 하기 위해 음식점에 가면 간장병을 훔쳐와 여과지에 드로잉을 할 정도의 가난을 극복해낸 막서보이다.

“천재가 존재하는가?” 정보의 발달이 천재를 없앴다. 지식을 버려라. 보약을 데려서 먹고 찌꺼기는 버리듯이 지식은 버려라. 그리고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길러라. 그림은 수신과정의 찌꺼기일 뿐이다. 그러면서 그는 선비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선비는 화가가 되려고 그리거나 서예가가 되려고 쓰는 것이 아니다. 선비들이 번뇌하는 것. 즉 정신을 씻어내기 위해 사군자를 그리듯, 그의 화가로서의 지향은 바로 수신이었다. 그리고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스님이 염불을 통해 자신을 비워내는 것과 같다고 역설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시대가 변하면 시대를 잘 파악해서 거기에 맞게 작업을 해야 한다. 예술은 자기 경험의 산물이다. 쉽게 하려고 하지마라. 금방 나오는 작업은 아류가 되기 쉽다. 나를 드러내려 하지 말고 배어나게 하여 중성화시켜야 한다. 작가가 살고 있는 환경이 변하면 바뀌어야 하는데,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심화시킨다고 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베껴 먹는 것은 심화가 아니다. 또 잘못 변화하면 99% 추락한다. 라우센버그나 야스퍼 존스는 변해서 4류가 되었다. 좋은 술은 충분히 숙성되어야 명주가 된다. 그렇듯 4-5년 새로운 시도가 내 몸의 일부가 되고 자신의 삶이 배어나오게 되어 객관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을 때 발표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21세기는 디지털시대이다. 디지털시대는 30대에 벌써 퇴직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디지털시대는 1회용 천재의 시대이다. 바로 선택되어 써지고 즉시 찌그러진다. “나 천재인데” 외치면서, 1회용 컵과 같이 폐기되는 것이 21세기 인간이다. 디지털시대는 변화가 빠르다. 그런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니까 스트레스이고, 사람의 값어치도 한 번 쓰고 버려지니 값이 싸다. 그래서 예술이 정서적으로 치유하는 쪽으로 가야한다. 색채도 인간의 정서를 함양해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내가 닮고 싶은 화가

평생 자기철학을 담아내는 작업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하는 프로작가의 정신, 검지에 자수정 반지를 끼고 이태리제 명품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멋진 외모,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는 삶의 모습 등은 나의 80세의 모습이고 싶다. 중앙일간지에 난 ‘채용신과 한국의 초상미술’ 전시기사를 보고 우리 미술관에 오셨다. 마침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열성 팬 한 분이 대전에서 오느라 조금 늦었다. 같이 온 일행이 조급해하자, 늦게 오는 분이 얼마나 마음이 급하겠느냐며 기다려주었다. 대가이니까 여유로울까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가 되었을까?

이우환, 박서보, 김남조시인, 안휘준, 허영환, 유준영 선생님들을 올 봄 전시를 통해 만났다. 그러는 사이 봄날이 갔다. 하지만, 책에서나 보았던 이런 분들을 직접 만나 몸으로 그 분들의 삶과 아우라를 느낀 것은 평생에 다시없는 행운이고 축복이라 생각한다. 6월 16일 오후에 전북도립미술관에서 화가 박서보와의 만남을 도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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