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과 상호존중 (7)
자율성과 상호존중 (7)
  • 문창룡
  • 승인 2012.05.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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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의 이야기를 연재하던 중에 핀란드의 학교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S의 이야기와 함께 핀란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꼭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핀란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문화는 어느 상황에서든지 자율성과 상호존중의 관계가 생활 속에 베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즐겼다. 그들은 강아지가 가는 길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적절히 조절하며 길을 갔다. 자동으로 풀어지는 줄을 가지고 강아지에게 많은 자율성을 허락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하기야 그 나라 사람들은 알 낳는 닭에게도 권리가 있다며 방목에 의해 생산한 계란만 판매가 허용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강아지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짐작 가고도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애완견 강아지를 꼭 껴안고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유독 많이 볼 수 있었다. 강아지는 숨이 막히는지 혹은 답답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쩌자고 강아지를 저렇게 움켜잡고 있을까?’ 핀란드 거리에서 보았던 강아지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 다른 풍경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강아지를 부둥켜안고 다닐까?’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진짜 강아지를 좋아하기는 하는 것일까?’ ‘왜 강아지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주인 생각대로 하지?’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갔다. 급기야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저러한 모습으로 자녀를 대하는 성향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강아지에게도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호존중감은 대단한 것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밑바탕 정서가 바로 상호존중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못하는 동물에게까지 이러는데 제자식과 이웃들에게는 오죽 하겠는가? 핀란드 사람들은 주택을 지을 때 아이들을 위해 당연히 만들어 주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의 소꿉놀이를 위한 작은 집이다. 아담하고 예쁜 집이었다. 그 나라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 준 자기 집에서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별채까지 가는 길에는 바람개비를 만들어 돌아가게 하거나 오솔길을 조성해 놓았다.

자녀 교육에 성공하려면 자신의 영역을 소중히 여기며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스스로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자율성을 나처럼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S는 근본적으로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가족 간의 갈등을 만들었던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이 자녀의 소꿉놀이 집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자율성을 길러주기 위한 시도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소꿉놀이 집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그렇게는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녀가 무슨 말인가를 해 왔을 때 진심으로 귀담아 들으며 자녀의 상황에 대해 가장 적절한 대화를 찾아 나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부모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본다. 핀란드 아이들과 S의 이야기는 당분간 더 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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