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하여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하여
  • 김우영
  • 승인 2012.05.1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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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보 진영을 포함한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몰상식적인 추문들은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심각한 수준에서 위협받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헌법에 표현된 자유민주주의를 근본 가치로 하고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고난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통용되는 생활양식으로 정착될 때, 실현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많은 부문에서 비민주적 행위를 관행, 좋은 목적, 또는 효율성의 극대화 등을 이유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행태가 엄존하고 있다. 사회 내 비민주적 세력은 항상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고자 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따라서 사회의 제 영역에서의 민주화는 항상 새로운 도전과 퇴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서도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노력은 어느 시점에서 필요성이 없어지는 덕목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양식으로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또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그렇다.

특히 특정의 이익, 목적을 위해서 민주적 절차를 도외시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신문 지상에 등장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퇴행 현상으로 진단할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의 하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목적이 정당하다면 어느 정도의 잘못이나, 불법이 간과될 수 있다는 믿음이 통용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어떤 목적보다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목적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 이르는 절차에 더 비중을 두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감이 “선의의 부조”라는 이름으로 후보자 간의 금전 수수 행위를 미화하는 일이 있었는데, 선의의 부조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덕으로 칭송을 만하다. 아마도 권장해야 할 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의도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법절차에 의해서 금지된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행위가 불법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기준은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당화되지 않는 이유는, 그 자체로서 불법이기도 하지만, 이를 용인한다면 더 큰 사회적 해악을 가져올 것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해악은 얼마 전 전남 교육감의 경우도 친구들로부터의 금품 수수를 “선의의 후원”으로 정당화함으로써 나타났다. 목적을 통한 수단의 정당화의 해악은 우리의 모든 도덕규범과 법절차를 무효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선의의 거짓말”도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선의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지혜를 발휘하여 거짓말이 아니라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그것의 이익 못지않게 그 해악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정권 교체, 진보의 가치라는 목적의 이름으로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주장이 희석되는 행태는 더욱 우려할 만하다. 정당의 목적이 정당의 존립 근거이고, 이의 실현을 위해서 매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당의 목적과 활동은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당내에서 먼저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 보조금을 지출하는 것은 그들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적 절차에 의해서 규제된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특히 통합 진보당, 통합 민주당에서 제기되는 경선 절차에서의 부정행위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한편으로 정당한 결정에 대해서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 하에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합의된 결과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는 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절차는 단순히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절차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무시되어도 좋은 것이 아니며, 다른 진보의 가치를 위해서 훼손되어서도 안 되는 진보의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 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온 국민이 합심하여 투쟁해 왔다. 그러나 그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념이 희석되고 있다. 시민 세력들 간, 시민과 정부 사이의 소통의 부재는 민주적 절차가 정치와 일상의 생활양식으로 아직 정착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사회 각 영역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노력이 항상 존재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퇴행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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